낙태에 대한 짧은 이야기
Tweet 여유롭던 주말 오후, 트위터에서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일의 발단은 필자가 루이제린저의 소설 [생의 한 가운데에서]를 읽다가 주인공 니나의 말을 보고나서 하나의 Tweet을 하게 된 것이었다.
주인공 니나의 말은 그가 대학생이던 시절 정신병학 강의에서 교수가 “불치의 정신병자에 대한 안락사” 문제를 다루게 되면서 나온 것이었다. 이 강의에서 교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법적으로 허용된 파괴가 존재한다. 형법은 사형을 허용하고 국제법은 전쟁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불치병자에 대한 살해도 허용될 수 있는 법칙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것이 되어 있지 않다“라고 발제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 학생이 “독일 민족이 휴머니스트들의 나약한 견해에 반대하고 강자의 지배를 택한 날부터 그 법칙은 존재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니나는 “나도 이 민족에 속하지만 그 의견에는 반대한다. 많은 이들이 반대한다. 국민의 일부에 의해서만 찬성된 법칙이 어떻게 실시될 수 있는가?“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것에 찬성한 것은 국민의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다” 라고 반박한다.
이것은 나치가 지배하던 2차대전 직전의 독일의 모습이다. 그야말로 파시즘이 만연한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 그대로이다. 국민은 자신들이 무엇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채 사회적 약자를 분류하고 그 파괴를 다수의 결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용인한다. 심지어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그리고 그 직후 니나는 이런 말을 한다. “누가 그럼 생과 사를 결정하는 권위자가 된다는 말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살인은 살인이라는 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당신같은 양심없는 사람들일 테지요! 그리고 당신같은 사람들은 법으로 가장하고 죽이기를 한 번 시작하면 다음에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죽이고 또 죽일 것입니다. (중략) 나는 그것에 반대하기를 그치지 않겠어요. 나는 끝까지 반대하겠어요. 그리고 살인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것에 필연성과 선의의 가장까지 붙여주는 국가를 절대로 시인하지 않겠어요.“
이 부분에서 작가가 니나를 통해 말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라고 느꼈다. 하나는 파시즘에 물든 이들이 국가와 법치, 그리고 도덕이라는 이름을 방패삼아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얼마전 트위터에서 한 분의 트윗을 보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추상적인 권리에 대한 논쟁인데도 낙태를 법에도 없는 살인이라는 표현으로 죄의식을 유도하려는데에는 정말 손발이 오그라든다는…낙태가 살인이면 유산은 업무상 과실치사냐고요“
개인적으로 필자가 이 분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필자가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이 트윗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필자는 낙태가 살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고, 심지어 유산마저도 업무상 과실치사냐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비록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었고, 필자는 이런 전후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트윗을 하게 됐다.
“우리는 타인의 인생과 생명을 제멋대로 결정하는 자본과 기득권자에게 저항한다.파병을 반대하는 것도 그래서다.그런데 그중 일부는 타인의 생명을 마음대로 종결짓는 낙태에 찬성한다.과연 낙태 찬성론자는 파병을 반대할 자격이 있는가?“
그런데 필자가 내심 스승님으로 생각하고 있는 @jonghwan 님이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는 트윗을 하시며 필자를 몰아붙이셨다. 그 내용이 서로간에 수십개의 트윗에 해당되는 내용이었기에 그걸 일일히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순서대로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낙태가 생명을 종결짓는 행위인가요? 생명은 언제 시작?“
“식물인간은 사후 그렇게 된거고 뱃속의 태아의 경우 스스로 산 적이 한번도 없죠. 그리고 장기의 유무 만으로 생명의 존재를 정하는건 나중에 과학의 발전으로 인공장기 등을 갖춘 로봇이 가능할 때는 쓸수 없는 논리가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은 스스로 영역을 섭취하고 자라난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지요. 24주 이전의 태우는 그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후 자생력이 없을때 생명이느냐의 문제는 죽음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전에는 의학능력이 떨어져서 강제로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불가능했죠. 이제는 태아나 뇌사 상태의 존재를 ‘기술’로 심장을 뛰게 할 수있어문제“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서양 전통에서 생명에 대해 정의하는 방식이 두 가지(기독교와 헬레니즘)가 있고, 이 두가지 모두가 나름 강력한 논거가 있지요. 그냥 특정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는“
“낙태 문제의 핵심은, 여러 가지 논리들이 다 나름대로 의미있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한쪽도 결정적인 논리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걸 강요하거나 법으로 만드려는 시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프로 라이프건 프로초이스건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죠. 제 개인적인 입장을 말씀드리면, 전 착상때부터 생명이 시작되고 그래서 낙태는 절대 반대입니다..단지 남에게 강요하거나 법제화를 반대할뿐“
“제가 한말 못보셨군요. 낙태를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강한 논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한쪽의견을 강제하면 안될 뿐더러 법제화는 더욱 안된다는겁니다. 제 타임라인을 보시라능“
“반대여요. 가장 확실히 생명이라고 증명되는건 출산 직후지요. 그 전의 어떤 시점이라도 생명이라고 정의하려면, 그 정의를 하는 사람들에게 정의의 책임이 있어요. 따라서 부당성이 증명되지 않은게 아니라, 낙태반대쪽에 증명책임이 있음“
긴 문장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을 위해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jonghwan 님의 말씀은, 일단 “생명”이라고 완전하게 논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은 출생 뿐이고, 그 이전의 태아 상태가, 그것도 그 중 어느 시점이 진정한 “생명” 혹은 “인간”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명백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낙태를 “살인” 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태아가 인간 혹은 적어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출생이라는 명백한 기준이 아닌, 착상이나 생후 몇 주라는 애매한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 먼저 증명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배경 설명을 하자면, @jonghwan 님 스스로는 믿음 깊은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적 믿음에 근거해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jonghwan 님 스스로가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적 입장에서 (@jonghwan 님은 철학 박사 과정에 계신 분이다) 자신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성찰과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또다른 배경을 설명하자면, 필자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필자가 두 딸을 얻을 때 무심코 기형아 검사를 했고, 그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서 추가로 염색체 검사를 통해 두 딸이 확실하게 기형아인지를 검사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 염색체 검사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 기간 동안 필자는 평소 낙태 반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 기형아에게 주어지는 미래를 고려할 때 아이를 지우는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고뇌했고, 심지어 “나의 미래에 기형아 자식이 주는 고통을 고려할 때 낙태하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도 해보았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둘 다 염색체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는 결과가 나왔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자라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마음 고생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울 정도이다. (심지어 당시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혼자 차를 몰고 나가 정신없이 과속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차를 폐차한 적도 있다) 그렇다보니 개인적으로 그런 상황에 처한 이들이 어떤 심적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를 한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낙태를 찬성하는 이들 중에는 물론 무조건 찬성하는 이도 있지만 오히려 이는 소수이고, 그보다는 자생력이 생기는 임신 24주 시점이나 장기가 형성되는 12주 시점, 그리고 착상 시점 등 다양한 시점에 따라 그 이전을 생명체로 보지 않으니 낙태가 가능하다고 보는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필자가 최초에 트윗을 했던 “낙태 찬성론자는 개인의 권리를 위해 살인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트윗은 애초부터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일부를 전체의 프레임에 가두어 몰아붙이는 잘못된 태도라는 것이다.
필자의 이런 잘못된 태도 – 일반화의 오류, 상대의 논점을 잘못 파악하는 오류 – 를 다른 낙태 반대론자에게 대입해 보아도 대부분 일치한다. 즉, @jonghwan 님이 반박하려고 했던 핵심은 낙태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다. 그보다는 낙태라는 이슈에 대해 수 많은 견해가 존재하며 나름대로 자기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낙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무조건 찬성에서부터 24주 이전 찬성, 12주 찬성, 착상전 찬성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를 모두 살인 행위로 몰아간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위의 @jonghwan 님의 트윗에 나오는 프로 초이스(Pro Choice)와 프로 라이프(Pro Life)가 그것인데,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 찬성론자가 앞서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하나로 뭉뚱그려 Pro Choice 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반대론자를 Pro Life 라고 부름으로써 마치 낙태 반대론자는 “라이프”를 중시하고 찬성론자는 “라이프”를 경시하는 것으로 프레임에 몰아 넣는다. 그런데 필자는 이 글의 맨 앞에 나오는 파쇼들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오히려 그 파쇼들이 하는 것 처럼 상대 – 낙태 찬성론자 – 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하나로 프레임이 몰아 넣어 비난한 것이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jonghwan 님이 나중에 필자에게 따로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래에 그 이메일 내용을 공개한다. 중략한 부분은 필자와 @jonghwan 님간의 약간은 개인적인 부담없는 대화 부분이고 나머지 중요한 부분을 공개한다. 아래 내용에서 민주당은 미국의 민주당, 즉 Democratic Party 이고 공화당은 Republic Party 이다. 각각 한국의 민주 진영과 한나라당 진영으로 보면 될 것이다. 참고로 미국의 민주당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좌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영부인 미셸 오바마여사는 사실상 좌파라고 봐도 될만한 행보를 해왔었고, 얼마전 타계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도 엄청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지지자가 보면 완전히 빨갱이 소리 들을만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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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요, 여기 아틀란타는 완전 봄날씨입니다.
(중략)
Lakoff라는 버클리대 인지 언어학자가 있는데요. 이 사람이 공화당의 수사술에 대해서 하는 말이 있어요. 이들은 framing의 천재들이라는 거여요. 그러니까 사실을 크게 왜곡하지 않더라도 그걸 틀에 끼워 맞추어 넣음으로서 상대를 꺾는다는거죠. 민주당이 항상 fact check를 하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게 바로 그런 까닭이라고 봐요. 대표적인 예가 부시 정권에서 썼더 tax relief라는 말이어요. 사실 이건 부자들에 대한 감세 정책인데 '릴리프'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이 정책이 사람들에게 평안함과 안전을 준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거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표를 얻는건데요. 마찬가지지만 부정적인 예는 한국 보수진영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일단 '좌빨'이라고 붙이고 보는거죠. 그러면 사람들은 아, 저쪽 사람들은 모두 '빨간색'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지요. 저는 공화당이 맨 처음 만들어 낸, pro choice/pro life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해요. 이 표현이 바로 Lakoff가 지적하는 공화당의 framing의 대표적인 예이거든요. 낙태를 찬성하는 진영에도 서로 굉장히 다른 스펙트럼이 있고 각 진영은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고 있어요. 그런데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낙태 반대 진영은 이들 모두를 통틀어서 'pro choice'라고 이름을 붙이죠. 그리고 자신들은 'pro life'라고 붙임으로서 마치 'pro choice' 진영은 생명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듯한 인상을 주는거여요. 사실 이 문제는 생명과 권리의 대립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이고, 권리와 생명은 이렇게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어요. 하지만 보수진영에선 이런 프레임을 만들어 두어서, 마치 pro life가 아니면 무조건 생명은 경시하는 사람들인양 에둘러버리는거죠.
이거 마치 한나라당에서, 노빠들이나 PD나 NL이나 전라도 꼴통 민주당 지지자들이나 모두 '좌빨'로 프레이밍 해버리는 것과 똑같아요. 이렇게 하면 한나라당은 전선이 분명하게 서고, 그래서 싸움을 하기 쉽고 결국 자신들이 득표하기 쉽거든요. 하지만 소위 '좌빨'들 내에서 PD들은 자신들이 전라도 꼴통 민주당 지지자들과 한편이라는걸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진저리를 칠겁니다.
이렇게 단순히 프로라이프/프로초이스로 나누어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건 참 위험해요. 소위 프로 라이프 진영에도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부터 시작해서, 예외를 허용하는 경우, 18일, 40일,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 허용, 등등 여러 입장이 다르구요. 소위 프로 초이스 진영도 여러 다양한 입장들이 있어요. 하지만 확실한것은 프로 초이스 진영에서 생명보다 한 사람의 권리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 밖에 없고, 그 수는 소위 프로초이스 진영에서 1%도 안될 정도로 약해요. 따라서 프로초이스면 무조건 생명을 경시한다는 주장은 아주 위험할 수 있어요.
정치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기에는 이런 프레이밍이 매우 유효하죠. 그래서 보수진영들이 어느 나라든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하는거고, 국민들은 보통 이런 전략에 잘 넘어가요. Lakoff라는 사람은 미국 민주당도 이런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어쨌든 정치에선 이런게 의미있을지 모르지만 낙태 문제는 정치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걸 이렇게 단순하게 진영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나누어 상대를 공격하는데 이용하는건 전 별로 좋지 않다고 봐요.참고로 낙태 문제에서 증명해야 할 두 가지 전제가 있어요. 하나는 뱃속의 태아가 언제부터 생명인가. 둘째는 무고한 사람은 죽여서는 안된다는 전제는 유효한가여요. 둘째 전제는 어제 논의 안했는데, 왜냐면 이 부분은 다들 동의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제는 전쟁이나 사형 제도 등등에서 알 수 있듯, 많은 사람들은 '죄가 있는 사람은 죽일 수 있다'라는 것도 받아들여요. 그러면 뱃속의 태아가 과연 '무죄'인가도 또 한번 증명되어야 할 문제이기도 해요. 가톨릭은 사실 이 부분에서 큰 약점이 있어요. 아시다시피 영세를 받기 전에는 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이건 또 복잡한 논의가 있어요..
어쨌든 도움이 되셨으면 해서 생각을 정리했어요. 복된 주일 보내시고, 우리가 갖는 믿음이 다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닌것은 아니죠. 단지 논리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뿐. 그들도 우리의 신앙과 동일한 종교적 경험을 함으로 같은 신을 받아들이기만 바라고 할 수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평안하세요!_M#]
결국 문제는 이렇다. 낙태 반대론자는 낙태 찬성론자가 모두 살인을 옹호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낙태 반대론자가 반대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며, 모두가 출산 직전의 아기까지 낙태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각각의 기준이 있으며, 그 기준점 이전의 태아는 생명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찬성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낙태 반대론자는 이것을 이해하고 토론하고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전체를 프레임에 넣어 주홍글씨를 새기며, 이미 6개월이 가까와진 태아를 낙태하는 비디오 등을 통해 여론 재판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파쇼들이 전문적으로 행하는 프로파간다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이라면 @jonghwan 님이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낙태를 찬성하건 반대하는 어느 의견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찬성하건 반대하건 그 어느 것도 완벽하게 반박 가능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면 그런 의견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이 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제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또다른 논리가 있다. 그것은 “생명인지 아닌지 모를 존재 때문에 명백하게 인간인 존재의 권리가 침해당해도 되는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다른 분이 필자에게 제기한 의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앞서 생명이다 아니다를 증명할 수 없으면, 명백하게 생명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기준점(출생) 이전 시기를 생명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게 싫으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같은 것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인지 아닌지 모를 존재” 라는 표현 자체는 “생명일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고 봐야하지않을까? 다시 말해 “생명이라고 말하려면 자생력을 갖추어야 하므로 24주 이전은 생명이 아니고 24주 이후는 생명이다” 라고 명확하게 주장하는 경우에는, 24주 이전을 생명이라고 보지 않는 경우이고 나름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생명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 확실하게 인간인 존재의 권리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 말을 하는 사람 역시 태아가 생명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필자의 잘못된 주장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대로 생명이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으면서 자꾸 생명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이미 억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인지 아닌지 모를 존재”라고 말하는 이의 마음 속에는 이미 태아가 생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에서 눈을 돌려 나머지 생명이 아닐 가능성 때문에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야말로 필자가 애초에 지적했던 자기의 권리를 위해 다른 존재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싶다.
아무튼 낙태가 이렇게 애매한 기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제한되는 것이 맞느냐 혹은 그른 것이냐라는 문제에 대해 필자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로는 @jonghwan 님의 의견을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jonghwan 님의 경우 그런 이유로 스스로 낙태 반대론자임에도 낙태 금지를 법제화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그것에 대한 논리적 기준이 없다고 하더라도 필자에게는 신념이라는 것이 있고, 그 신념은 바로 태아 역시 생명체이고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태아가 인간이라면 누구보다도 사회적 약자에 해당되기에 그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이번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해서는 안되며, 그 과정에서 상대를 프레이밍하고 일반화하며, 그를 통해 상대를 악한 세력으로 묘사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비겁하고 옳지 못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은 이후, 다시 한번 이 글 맨 앞에서 니나가 말하던 “상대를 마음대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수라는 이름으로, 혹은 도덕이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나 스스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이 이 블로그 글을 쓴 이유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준 @jonghwan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Barry Lee ( @barry_lee )






축구와 사진을 사랑하며 트위터를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 어머니와 아내, 두 딸들을 사랑하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빠. 그러나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늦깎이 열혈남.
아니..중략이라고 해놓으시고는 딱 한문장만 빼셨군요 –;;
1. 사실 제 논리도 별거 아닙니다. 이쪽 분야에서 전공하시는 분들이 보기엔 아주 초보적인거라 부끄러울 따름이지요..ㅠㅜ
2. 감사는 뭐 나중에 밥사시면 됩니다. 저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서..쿨럭..사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부끄러울 따름이라는 ㅠㅜ
3. 제가 처음에 형님 트윗에 대답을 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지요. 낙태를 찬성하는 것과 평화주의자가 같은 진영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씀. 제가 동의하지 않는 그런 일반화와 프레이밍의 전형적인 예라서 딴지 건겁니다. 좋은 결과였고, 좋은 결과가 나올줄 알았기 때문에 형님께 딴지 건거였어요. 그만큼 신뢰하니까.
어쨌든 이런 이야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 그리고 블로그는 귀찮아서 운영하지 않는 저 대신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미예수!
사실 아무리 똑똑한 척 해도 부족한게 많아요 ㅠ.ㅠ 이래저래 잘난척 해도 생각의 깊이가 엄청 얕다는 걸 느낍니다.덕분에 늘 배우고 있어요..
아무튼 고마워요! 찬미예수!
두 남성분이 낙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신 것 흥미롭군요. 여성들은 어떨까요. 저는 낙태에 찬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군요. 낙태을 줄이기 위해선 낙태 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보다 착상방지약을 의사의 처방없이도 살 수 있도록 의약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임신은 결혼한 여자만 하는 게 아니고 기형아 낙태보다 원치않은 임신에 의한 낙태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결혼한 여자도 그렇고 안 그런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건 질문인데요. 수정란을 생명으로 본다면 생명 탄생의 근원을 정자,난자에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요. 속된 말로 씨를 뿌린다는 말이죠. 종교적으로 성행위자체가 생명창조의 행위이고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유희로서의 섹스는 죄인가요.
글쎄요.. 사실 저도 나이롱 신자라서요.. 종교적인걸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죠..ㅋ
제가 말하고자 하는건 뭐가 옳으냐가 아니라, 정확하게 논거할 수 없는 걸 가지고 남을 제재할 수 있느냐라는 거죠.
뭐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저만의 신념은 있답니다. ^^
“도덕이라는 이름을 방패삼아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행위”!! 이것때문에 지금 이순간에도 여성 하나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여성에 대한 언급을 페미니즘적 접근이라 생각하고 불편해 하는 남성분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명백한 피해자의 사연을 듣고 낙태논의에서 온몸을 부르르 떨 수 밖에 없는 페미니스트들도 좀 이해해 주길… 엊그제 TV 토론에서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께서 “고려장”을 언급하시면 낙태반대론을 펼치셨는데 “긴병에 효자 없다”고 안락사 문제도 법제화 되지 않았습니까? 사형제..안락사..낙태문제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면 남성분들 좀 이야기하기 편해 지실라나요?
하지만 한가히 논의하는 지금도 낙태에와 양육에대한 모든 경제적, 육체적, 도덕적책임을 혼자 안고 가야하는 사람이 있음을 너그러히 헤아려 주시길…..
넵..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여성이 곤경에 처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게 우선이겠죠
마지막은 반박이 아니라 궁금해서 물은 순수한 질문인대요. 전 종교인이 아니거든요. 종교인들은 유희로서의섹스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원래 종교적 가르침에서는 단순히 유희로서 배우자가 아닌 이와 갖는 섹스를 죄악으로 봅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혼전 섹스도 용인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봅니다.
개신교쪽 교리는 결혼한 커플의 경우에는 유희만을 위한 섹스라도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 쾌락을 얻을수 있도록 창조하셨으니깐요. 다만 성경에서는 올바른때에 올바른사람과 하라는것이죠.
Barry님도 배우자와 아닌이와 갖는 섹스라는 전제를 말씀하신것을 보면, 사실 똑같은 말씀하시는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 때 둘째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 지라 관심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군요.
생각의 소재가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엉뚱하게도 이런생각을 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너무도 다양한 약함을 자신의 책임으로 보살피려 하기에 오히려 약한것을 더욱 약하게 만드는것은 아닐까? 하는, 어떤때는 그냥 놔두는것도 도움의 한 방법일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낙태를 허용하든 금지하든 그것을 법이라는 규정으로 제도화 해서는 안된다는것이 짧은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을 법으로 규정하려 함으로인해 생명이 법의 하위에 존재하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는것 같습니다.
아무튼…
뭐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반성하고 그래요???? 예???
이딴 식이라면, 2Mb같은 사람은 수천번은 자살했어야 -.-
쿨럭.. 그래도 반성하고 살아야죠 ㅠ.ㅠ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제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진 않구요.
다만 두 분 모두 종교를 거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 모두 개신교와 가톨릭을 공식적으로 대변하시는 것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비신앙인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충분한 소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칼날과도 같아서 아무리 사랑으로 이야기해도 누군가에겐 상처를 줄 수 있게 마련입니다.
그저 두 분이 오피니언 리더로서 글을 통해 우의를 다져가시는 것을 보는 것은 좋으나,
종교를 거론하지 말아주셨으면 하고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모두 결점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는 일을 두고 어느 것이 옳다 또한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고 살아가는 수 밖엔 없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깊은 생각 담은 글 잘 읽었고 댓글도 잘 보았는데 여기 참 확 깨는 댓글 다신 분이 있군요. 이 두 분은 각자 종교적 신념이 있지만 그럼에도 낙태에 대해 진지하고 철학적인 논의를 했을 뿐입니다.
바보님 외에 누가 이 글을 보고 두 사람이 종교를 공식적으로 대변한다고 착각하겠습니까?
다른 독자들의 수준을 바보님 수준으로 낮춰 보지 마세요.
이제야 이 포스트를 봤어요. 페북에서 한 말이 뭔지 알겠다능..근데 저도 낙태 그 자체에 찬성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거는 미리 전제해 둡니다.
저 말은 왜 나왔냐면, 낙태당사자의 고통과 결정에 대한 존중이 없는 비난에 대한 이야기였죠.
본인이 낙태를 반대하건 찬성하건간에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가 없다면 비난 받고 상처받은 쪽은 비아냥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일단 변명합니다.
어쨌든 태아가 생명이냐 아니냐의 논의는 낙태출산 결정권에서 해야할 논의가 아닙니다.
단지 제 주장은 국가가 가진 선택권을 개인에게 돌려줘야한다는 거죠.
제가 임신했는데 낳을지말지를 결정하는게 제가 아니고 국가라는 게 제 권리를 침해한다는 얘기죠.
실제로 낳건 안낳건 관계없이 그걸 결정하는 권리가 왜 국가에게 있어야하는가, 국가가 왜 여성의 출산을 결정하는가하는 문제-즉 실제의 행위와 관계없는 법제화의 문제예요.
그런데 실제와 법제화의 차원을 따지지 않고 낙태출산선택권을 주장하면 살인자라는 식의 비난을 지속적으로 한달째 프로라이트의사들로 부터 진보신당 여성들이 받고 있거든요.
예, 저도 말씀하신 그런 부분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프로라이트의 그 의사들의 주장은 어찌보면 비겁한 거죠. 논점 일탈이니까요.
며칠전 댓글을 달았는데 안보이네요.. 뭔가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듯..
아무튼 말씀하시는 바를 이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와 생각의 거리는 (약간) 있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부분이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쓰느라 정말 수고하셨어요! 두분의 대화 덕분에 저도 낙태문제에 대해 좀 더 다차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저도 지금까지는 낙태 논쟁이 단순히 생명 대 권리의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제가 낙태 문제에 깊게 관여되어 있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명 대 권리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많기 때문이에요. 특히 낙태를 찬성하는 여자분들 중에.. 그런 여성분들이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스럽지만 사실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이 종종 ‘태아는 여성의 몸의 일부이므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는 논리로 생명에 대한 논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걸 보면 솔직히 무섭고 씁쓸한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적 시스템의 미비를 이유로 낙태를 지지하는 것도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구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것처럼 pro-life와 pro-choice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낙태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저처럼 단순히 생명과 권리의 문제라고 간단히 결론내리기가 쉬울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분의 대화를 읽고 나니 역시 문제는 단순히 금지냐 허용이냐의 문제가 아닐 것 같아요. 논의를 낙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몰고 가는 것도 부당할 것 같구요. 낙태 찬성론자들 가운데서도 생명의 시작지점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면 거기서부터 일단은 ‘살인’의 가능성은 배제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니 그보다는 낙태의 적절한 시기에 대한 논의가 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허용되는 것을 떠나서 사람들이 낙태만을 최선의 해결책이라 생각하는 일이 줄어들도록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나 보육시설, 입양시스템 등의 제도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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