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명가의 부활인가, 잠시 동안의 반짝임인가

2007/5/3 by

1. 차범근 감독과 함께한 부침(浮沈)


명장 김호 감독님에 이어 수원의 감독에 임명된 차범근 감독은 사실 그 유명세 만큼이나 회의적인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울산 시절에도 그랬지만 사실 그의 축구는 미드필드를 거쳐가는 아기자기한 축구라기보다는 자신이 뛰었던 독일의 선 굵은 측면 공격 축구였음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와의 5-0 경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성정은 능구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승부사라고 하기도 어려운, 성실하면서도 정직하고 다소 소심해 보이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많은 축구팬, 특히 그랑블루의 일부 회원들은 처음부터 반대를 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차범근 감독의 수원은 취임 첫 해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세번째 별을 답니다. 그리고 이듬해 시즌 직전의 A3대회에서 기가막힌 축구를 선보이며 우승하고, 이어진 리그컵 대회에서도 우승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수원의 흐름은 내리막을 그립니다. 어려움에 어려움을 거듭하고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며, 그 이듬해 컵대회에서는 감독의 시즌중 월드컵 해설 출장이라는 무리수까지 안아가며 컵대회 중 꼴찌라는 기록까지 달성합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뭔가 배워오기라도 한 듯, 이후 수원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려 FA컵 우승과 리그 우승의 바로 직전까지 도달합니다. 하지만 뒷심 부족인지, 혹은 전술이 읽힌 것인지 결국 준우승에 머물고 맙니다.


그랑블루의 비공식적인 반대 속에서도 재계약을 한 차범근 감독은 2007시즌에서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자신있게 말했고, 초기의 반짝임 후 잠시의 머뭇거림이 지나고 난 뒤 다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2. 북패전에서의 패스 축구, 본모습인가 우연인가


5월 2일에 있었던 컵대회 북패전에서 수원은 후반 19분경 여러 차례에 걸친 멋진 볼 키핑과 짧고 정확한 숏패스를 이어가며 골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백지훈 선수의 골입니다. 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2006 월드컵 당시의 아르헨티나를 연상시킨 그 골은 차범근 감독의 축구가 뻥축구, 측면 축구, 역습 축구라는 주장을 단번에 불식시킬만큼 수준 높은 플레이였습니다.


사실 2006년 이후 수원의 축구는 뻥축구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2004년 우승 당시의 축구야말로 독일식의 측면을 따라가며 두세번의 패스를 통해 상대 코너 플랙 부근까지 볼을 이동한 후 크로스를 올리는 식, 또는 하프라인 근방에서 반대편 페널티에어리어 외각으로 단번에 올리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엄밀히 말해 2005년 초반부터) 이후 수원은 경기가 안 풀릴 때에도 지겹도록 중앙 공격만 파고드는 답답한 모습을 보일지언정, 처음부터 뻥축구를 하는 팀은 아니었습니다. 뻥축구가 나오는 시점은 언제나 상대에게 지고 있는 후반 15분경 이후였습니다. 이쯤되면 수원의 경기를 함께 보고 있는 사람들 입에서 “이쯤이면 뻥 나오겠군.. 옛다 니가 알아서 해라 뻥” 이라는 소리가 나오곤 했습니다.


2007년 시즌에서도 수원은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 보다는 계속해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추구한 것도 사실이고, 4월 중순의 답답한 플레이의 뒤를 보면 여전히 고집스럽게 미드필드와 중앙을 공략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수원의 축구는 사실은 롱패스 축구가 아니라 뭔가 미들과 중앙에서 만들어 보려는 축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북패전의 분석을 통해 본 수원 축구


북패전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3-4-1-2로 나온 전반전은 사실 날카로운 공격은 몇 차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3백이 매우 수비적으로 플레이한데다 송종국, 양상민의 두 윙백이 조금 수비적이거나, 혹은 정확한 역할을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 결과 이관우-백지훈-김남일 세 명의 미드필더가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고, 에두와 서동현마저 미드필드 플레이에 가담함으로써 정작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공격수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반면 후반전 들어 4-3-3 형태 또는 4-4-2 형태의 진형을 갖춘 수원의 플레이는 또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김대의 선수가 측면에서 활발한 공격을 이끌어가며 북패의 미드필더와 수비진을 끌어냈고, 이 공간에서 이관우-백지훈-김남일 선수는 손쉽게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동현과 에두 선수 중 한 명 정도만 미드필드 싸움에 가담하면서 공격수가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고 공간도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곽희주 선수의 골까지 나오자 북패의 선수들이 흔들리며 공간이 넓어졌고, 수원 선수들은 오히려 더 밀어붙이며 수비수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가 모두 상대 PA 근처에까지 전진하는 극악의 공격 전술을 – 이기고 있음에도 – 펼침으로써 좁은 지역에서의 숫적 우위를 가져오게 되었고, 두 골의 리드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과 흥분까지 겹쳐 그림같은 패스 플레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관우 선수가 안정환 선수와 교체되면서 수원의 선수들은 미드필드에서의 우위를 잃게 되면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공수 간격이 벌어지면서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결국 상대에게 골도 내주고 밀리는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안정환 선수의 활동폭이 좁았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보다는 안정환 선수의 투입 이후 김대의-백지훈-김남일-에두로 연결되는 미드필더 라인이 북패의 젊은 선수들을 제압하기에는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안정환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역할 자체가 적극적 수비가담 보다는 상대 수비에게 부담스러운 변칙적이고 한박자 빠른 움직임과 슈팅이라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즉, 안정환 선수의 교체 투입은 사실 당장의 팀의 플레이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안정환 선수의 컨디션 회복이라는 관점, 다시 말해 보험을 들어 둔다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4. 그러니까 요는…


적어도 차범근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가 바로 이런 짧은 패스 축구와 또 때로는 단번에 상대 후방으로 찔러주는 다이렉트 패스 축구의 혼용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은 필자가 이전에 후방에서 골 에어리어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때론 짧기도 하고 때론 길기도 한 템포 축구가 바로 차범근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가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 글을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매 경기 이런 플레이가 나오지 않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이미 차범근 감독이 원하는 축구가 그것이라는 것을 다른 팀의 감독들 역시 거의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단번에 빠르게 상대 후방으로 다이렉트 패스하는 것이 뻥축구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그 패스가 나오는 순간 상대의 뒷공간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상대 수비에게 걸릴 수 밖에 없고 – 수비는 공을 보고 플레이 하므로 유리한 위치에 서기 때문입니다 – 그것이 바로 뻥축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 수비수를 끌어내려면 선제골로 이기고 있거나, 혹은 짧고 빠르게 이어지는 패스로 상대의 조직력을 무너뜨리는 시도를 함으로써 상대가 이를 끊기 위해 전진 압박 수비를 하게 유도해야 합니다. 이런 플레이가 잘 먹혀 들어간 것이 4-1로 승리했던 컵대회 대전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애초에 이런 식의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미드필드에서 상대방을 압도해야 하며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패의 홈에서 4-1로 패배한 경기를 보면 이런 식의 플레이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상대에게 미드필드에서 제압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에게 실력으로 제압당하면 수원의 플레이는 나올 기회조차도 없게 됩니다.


만약 상대가 수원의 미드필드를 실력으로 제압하기 어렵다면 선택할 수 있는 또다른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터프한 태클과 몸싸움을 걸어 수원의 선수들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1-0으로 북패에 승리한 경기가 좋은 경험이 된 것은 수원의 선수들이 더 이상 걸어오는 몸싸움을 피하기 보다는 스스로 몸을 던져 이런 상대의 플레이를 맞받아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수원에 늘상 부상 선수가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상대 선수들은 수원만 만나면 몸을 던져 플레이해서 수원의 공격이 시작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니, 이 과정에서 부상이 속출하게 마련입니다.


5. 결국은 마음의 문제


알고도 못 막는 축구, 하지만 알기 때문에 막기 쉬운 축구, 그것이 차범근 감독의 수원 축구입니다. 이런 템포 축구 – 짧은 패스와 다이렉트 패스를 혼용하는 – 가 제대로만 되면 상대는 짧은 패스에 당하건, 다이렉트 패스에 당하건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하지만, 한번 막히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선수들의 마음입니다.


2005, 2006 시즌에서 경기가 잘 안풀릴 때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후반만 되면 뻥축구가 됩니다. 전반전에도 대충 5분만 보면 뻔히 짐작 가능한 공격 루트만 두들깁니다. 결국 선수들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하고 잘 안풀린다 싶으면 다시 뻥축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수들도 스스로를 못 믿고, 감독의 지시를 못 믿고, 서포터와 팬도 감독을 못 믿습니다. 심지어 감독 자신도 스스로를 못 믿고 초조해 합니다. 경기가 잘 풀릴 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난이도가 높은 플레이를 시도하면서요..


결국은 그겁니다. 스스로를 믿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의도하는 플레이를 차분하고 끈질기게 풀어나가는 마음. 그것이 있을 때에는 최소한 지더라도 팬들에게 박수받는 경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다시 뻥축구가 됩니다.


6. 하지만 필요한 것은 마음 + α


하지만 그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만으로는 결코 우승까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2006 시즌의 마지막 경기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상대가 단판 승부를 목표로 담그겠다는 마음으로 덤비면 또 승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황하고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뛰고, 연습하고, 노력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추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2007시즌이 아직 많이 남았고, 그 동안 수원은 같은 식의 도전을 계속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2005년과 마찬가지로 하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은 늘 상존합니다. 이것은 좋게 말해 선이 굵고 정직한, 나쁘게 말해 단순하고 뻔히 보이는 축구를 선택한 차범근 감독에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그렇지만 차범근 감독도 이젠 대충 무엇이 문제인지, 또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눈치챈 듯 합니다. 선수들에게 힘을 주는 인터뷰도, 스스로 선수와 팬과 잘 어우러지려는 모습도 좋습니다. 그러니 올해는 고비 고비를 감독과 선수가 하나되어 잘 넘길 것을 기대할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감독부터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안되면 그냥 상위권에 들더라도 정말 멋진 팀을 만든다는 겸손하면서도 성실한 마음으로 임하기를 바랍니다.


배리 이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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