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트위터

2009/10/2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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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사로 우편물이 하나 배달되어 왔다. 곧 도착할거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생의 한가운데” 라는 루이제린저의 책이다.

2주쯤 전에 트위터에서 놀다가 장난삼아 “덕후적인, 너무나 덕후적인” 이라는 트윗을 어떤 분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트위터 타임라인에 연달아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는 니체의 저서가 거론되었다.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10대 시절 집에 있던 책꽂이 한 구석에서였다. 큰누이와 나는 무척이나 책을 좋아했다. 아마도 이 책도 큰누이가 보고 꽂아놓은 것이었지 싶다. 당시 내가 본 책은 이렇게 누이의 손떼가 묻은 누렇게 낡은 책이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책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읽은 일 자체가 나에게는 어린 시절,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추억이다. 한글도 아니고 한자로 人間的인, 너무나 人間的인 이라고 되어 있던 책은 바로 옆에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과 쌍둥이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는 루이제린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에게 있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는 책은 불행한 최후를 마쳤던 니체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루이제린저의 책이나 다름없이 분류되고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나에겐 니체와 루이제린저의 이 두 책은, 하나를 뽑아내면 다른 하나가 딸려나오는 그런 관계다. (아무튼 두 분은 독일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아닌가? 라고 우겨본다)
내가 혼자서 루이제린저를 그리워하고 있자니 @sophiekkim 님께서 “생의 한가운데!” 라고 트윗을 날리셨다. 반가운 마음에 몇 마디의 트윗을 나누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그 책의 한글판을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신 소피님 (@sophiekkim) 께서 그 책을 보내주시겠단다. 그리고는 며칠 후 갑자기 주소를 물어오신다. 소중히 아껴 보시던 “생의 한가운데”를 빌려주실테니 보고 돌려달라고 하신다. 농담삼아 “책은 빌려주면 못 돌려받는 건데요” 라고 답을 하려다가 소피님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고, 다시 루이제린저를 읽고 싶은 마음에 못이기는 척 주소를 알려드렸다.
이렇게 나를 찾아온 “생의 한가운데”는 곳곳에 소피님의 메모와 밑줄이 그어진,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진 티가 풀풀 나는 보물이었다. 감히 책을 펼쳐보려면 손부터 씻고 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책의 곳곳에 Sophie Kim 이라는 한 사람의 인간적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냥 한 권의 책이라기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 모습에 할 말을 잃고 가슴 한 편이 아릿해져 왔다. 타향에서 외롭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소피님의 모습이,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의 모습에 겹쳐 보였다면 조금 무리일까?
책의 안쪽에 삐죽이 나와있는 하얀 종이를 보고 소피님이 작은 쪽지를 넣으셨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학보를 주고 받을 때에나 느꼈던 그런 마음이다. 종이로 된 편지에 인간적인 마음을 담아서 주고받을 때에나 가질 수 있는 그런 풍요로움이다.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barry_lee =)


저와 6년 3개월의 미국 생활을 함께한,
전혜린 번역의 생의 한가운데 입니다.

좋은 분들과 좋은 책을 나눠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네요. 이래서 전자책의 춘추전국시대가
왔지만, 종이책은 계속 건재하겠죠? =)

2009년 9월 28일
from your twitter neighbor,
@sophiekkim
그리고, 메모의 반대편에는 네모난 말풍선과 그 아래에 140 이라는 숫자가 씌여 있었다. 140글자의 트위터 안에 담겨있는 따스한 인연으로 이어진 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그저 눈가가 촉촉해질 따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종이로 된 편지는 한 번도 교환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이메일만 주고받아온지 십여년이 지났다. 가장 인간적인 냄새가 나던 PC 통신 초기 시절에도 이 정도로 인간적인 관계는 맺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 장난꾸러기 사내녀석들과 노느라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이 발전할 수록 모든 소통은 이메일과 게시판으로만 이루어지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소통의 단절과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140글자로 이루어진 트위터는 그런 전자 통신의 첨단에 서 있는 기술이자 서비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안에서 오프라인의 만남에서보다 더 인간적이고 정감이 가는 인연을 만나고 있다. 지금쯤 한국에서 미국으로 열심히 날아오고 있을 책들을 보내주신 @JellybeanNJ 누님도 그렇고, 왠지 자꾸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아틀란타에 사시는 @jonghwan 님도 그렇다. 그리고, 나에게 인사를 던져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그리고 나의 짖궂은 장난에 웃으며 응대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그렇다. (많은 분들로 분류되신 나에게 무척 소중한 분들께 애도를..)
아무튼, 이제는 더 이상 단절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제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중한 인연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트위터라는 서비스가 오랜 기간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오랜 동안 이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만리 타국에서 추석이라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내던 나에게 찾아온 한 권의 책 덕분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운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sophiekkim님, 깨끗하게 읽고 독후감 쓰고 잘 돌려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arry Lee
PS> 위에 언급 안됐다고 삐질 분들께 드리는 말씀: 책 안보내주셔도 mention 한번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늘 감사하고 좋아합니다. 너무 삐지지 말아주세요.. ^^;;
PS2> 소피님, 소피님의 쪽지가 너무 감사해서 여기에 전문을 인용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a
PS3> 자신의 책의 존재 가치를 루이제린저에게 빼앗긴 니체에게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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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Comments

  1. @jonghwan

    저는 배리 형님한테 받기만 했는데 ㅠㅜ

    • Barry

      무슨 말씀이세요. 저에게 인생의 깊이를 주셨는데요. 그건 아무나 줄 수 있는게 아니죠. (제가 너무 쉽게 까먹어서 그렇죠..)

  2. 마음으로 써 주신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생의 한가운데-를 참 좋아하거든요.
    같은 책을 좋아하신다는 게 즐거워서 약간의 마음을 기울였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뻐해주시는 배리님이 오히려 감사해요. :)

    참,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트위터-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즐거운, 마음 따뜻한 추석 보내시길.

    • Barry

      이렇게 친히 왕림까지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정말 소중하게 잘 읽겠습니다. (장갑 끼고요…하하)

      인간적인 트위터에 따스함을 더하시는 소피님에게 평화와 행복이 늘 함께하기를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_^

  3. 따뜻한 세상이예요. ㅠㅅㅠ)b

  4. 앗~ 전혜린번역의 ‘생의 한가운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의 평전들… 저의 20대초를 지배(?)했던 책들인데…ㅎㅎ…그리고 두 분… 멋있습니다~^^

  5. 우와! 멋지고, 부러운 인연이네요 :)

    • Barry

      트위터에서 좋은 인연 많이 만드실 수 있을 거에요 ^_^

  6. @kheeuk

    먼 타지에서, 또 서로 떨어져 계신 이런 멋진 분과 알게 되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정말 트위터를 통해 소중한 인연을 많이 알아가는 느낌이에요 :)

  7. 읽으면서 미소가 빙그레 >_< 꺆꺆

  8. @larara33

    아.. 저도 그 책 참 좋아해요. 제 인터넷 아이디가 한동안 nina2004_6 였었는데..^^
    김소피님은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군요. 이배리님도 좋으신 분 같아요.ㅋ

    • Barry

      앗.. 그러시군요.. 우리 루이제린저 동호인 모임이라도 해야 하나요? 하하

  9. erai1

    앗 멋진 트위터… 그보다 더 멋진 소피님과 배리님이시네요~

  10. @vjinv

    와, 정말 사람내음 물씬나는 너무 아름다운 얘기예요^^*
    두분다 너무 멋지셔요 :)

  11. 추석날 출근해 있는 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셨네요~
    가슴 따뜻한 글 적어주신 배리님과 배리님을 따뜻하게 해주신 소피님께 감사를.. ^^

  12. 우왓. 이런 멋진 일이 있었군요 ^^;

    저 책을 저는 읽어보지 못한 책인데, 꼭 구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몽실몽실 … ~~. 요즘 읽을 책은 쌓이는데, 정작 독서시간이 줄어버려서 …

    • Barry

      트위터를 조금만 줄이시면 시간이 나지 않을까요? 하하

  13. 미 대륙을 가로질러 전해지는 情이군요. :) 저 책을 종종 접하면서도 다 읽어본 적은 없네요.

    • Barry

      메타님이 시작하신 기호가 널리 퍼지게 됐네요…ㅎ 감사합니다.

  14. @JellyBeanNJ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모두 본인이 만드는 것. 좋은 인연으로 배리를 만나게 된것이 얼마나 좋은일인지….

    • Barry

      예, 저도 누님이나 소피님 같은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15. @rabbiyang

    ..좋으시겠다 :)
    저도, 좋은 사람의 메모와 생각이 잔뜩 묻어 있는 그런 책을, 선물로 받고 싶어요. ㅎㅎ

    • Barry

      ㅋ.. 뭔가 “메모와 생각이 잔뜩 묻어있는 그런 책을 선물로 달라”는 포스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댓글이군요. 아쉽게도 저는 그런 책이 없네요. 좀 반성 중이랍니다. ㅎ

  16. @vivaespanya

    늦은밤 트윗을 하다 발견한 아주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을 보고 예전에 한창 읽었던 책들. 언젠가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도록 해야겠어요.

    • Barry

      예, 저도 이번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고 있답니다. 늘 행복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17. 그윽한 사람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18. 트위터에 대한 새롭고 따뜻한 단상

  19. ㅋ저도 배리 형님??한테 받기만 했는데 ㅠㅎ 트위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심 넘 감솨..

  20. 강좌못지않은 트위터이야기입니다.
    감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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