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가 할 일은 침 뱉기가 아니다

2012/9/24 by

박근혜 후보가 할 일은 침 뱉기가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사과를 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양자간 대결에서 두 후보에게 모두 역전당하고 다자간 대결에서도 위협을 당하게 되자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도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과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부른 것에서부터 사과의 내용이 애매하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정당화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 등, 이런 문제점은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박근혜 후보의 사과문에서 놓치고 있는 것

 

하지만 우리가 박근혜 후보의 사과를 대함에 있어 근본을 놓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놓친 것은 우리 뿐만이 아니다. 바로 사과를 하는 박근혜 후보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왜 사과를 하는 것인지, 그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박근혜후보의 사과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인 안철수 후보인 듯 하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기 위해 먼저 박근혜 후보의 사과 부분을 살펴보자.

 

하지만 압축적 발전의 과정에서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때로는 굴곡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저는 1960년, 70년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듯이 60년, 70년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라는 절대 빈곤과 북한의 무력 위협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는 무엇보다도 경제발전과 국가 안보가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기적적인 성장의 역사 뒤편에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고통 받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대해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는 공권력에 의해 인권 침해를 받은 일도 있었다. 5.16 이후 아버지께선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어야 한다고 했고 유신시대에 대해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까지 했다.

 

저는 아버지께서 후일 비난과 비판을 받을 걸 알았지만 반드시 국민을 잘살게 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고뇌가 진심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저 역시 가족을 잃는 아픔이 얼마나 크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저의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내용이 좀 횡설수설한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과를 하는 것 처럼 들리기 쉽다. 하지만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 60, 70년대에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했고 북한의 위협에 시달렸으므로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가 정당한 목표였다.

 

- 이 정당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과 공권력의 인권 침해가 있었고, 우리 아버지도 (쿠데타와 유신을 일으킨 군인이 되는 바람에) 불행했다.

 

- 비록 아버지의 이런 정당한 목표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선택한 수단으로 인해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지연됐다.

 

-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 입은 분들과 가족에게 사과한다. 나도 당신들처럼 부모를 잃었으니 당신들 마음 잘 안다.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

 

아직도 길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걸 아주 간단하게 줄여 보겠다.

 

과거, 너무 못 살던 것을 벗어나느라 노동자도 고생했고, 북한의 위협을 벗어나느라 인권침해 받은 사람도 고생했고, 그래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도 있고, 그런 일을 저지르느라 우리 아버지도 마음 고생했다. 당신 가족도 그렇게 죽고 다쳤고 우리 아버지도 그러다 죽었다. 미안하다. 우리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위로하며 잘 살자.

 

자세히 보니 이건 사과가 아니라 위로의 말씀이다. 나도 당신처럼 부모를 잃었으니 다 같은 처지 아니냐는 논리다. 그래놓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한 마디 써 놓았다. 그런데 사과를 하는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이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노동자 및 인권 침해를 받은 분들인지도 애매하다.

 

더 어이가 없는 부분은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을 거론하며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 부분이다. 민주국가에서 쿠데타가 벌어졌고, 이 쿠데타와 탈법적 개헌으로 인해 독재국가, 전제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정치의 발전이 지연된게 아니라 정치가 퇴보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로 왕정이 된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게 그냥 지연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지연”이라는 말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이 말은 분명 틀렸다.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은 민주주의를 유린한 것이며, 대한민국 정치를 후퇴시킨 것이다. 지연이 아니다. 지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거나 발전이 늦어지는 것을 말한다. 어렵게 자라던 나무의 밑둥을 잘라놓고 “나무의 성장을 지연시켰다” 라고 말해선 안된다.

 

박근혜 후보가 할 일은 침뱉기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박근혜 후보의 프레임에 넘어가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이게 의도한 것이 아니면 박근혜 후보 스스로도 자기가 왜 틀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박근혜 후보가 사과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점이다. 박후보는 이 사과문에서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잘 생각해 보자. 국민 중에 누가 박후보더러 자기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말했나?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후보가 박정희의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어떤 직접적 책임이 있을까? 박후보가 비록 유신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유신 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박후보 본인이 유신이나 5.16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세간에 회자되는 박정희의 여성 편력으로 인한 희생자들 이야기에 박후보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이나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박후보가 개입한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박 후보가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해야 할만큼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혹은 세간의 루머가 말하는 경제적 유산까지도 포함한 그의 유산)을 가지고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에 올랐으니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자기 손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그리고 자기 조상이 아니라 일부의 독일인이 저지른 홀로코스트 문제를 지금까지도 거론하며 국가 전체가 사과와 청산을 하고 있다. 그러니 박후보의 사과를 애써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박후보가 진정 해야 할 일은 이런 사과가 아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집권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 이러한 잘못된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이를 통해 이러한 역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잘못을 저지른 이가 아버지건 할아버지건 그건 사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는 공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부 경선을 거쳐 선출되었으며, 따라서 그러한 공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에 입각해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비판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박근혜 후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국민이 박근혜 후보에게 바라는 일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발의한 유신 무효화 결의안 체택이야말로 박근혜 후보 사과의 진정성의 가장 좋은 증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군사 쿠데타와 불법적 개헌은 헌법을 유린하는,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다. 또한 행정부의 수반이 사법부와 함께 억울한 이를 사형시킨 일 역시 헌법을 유린하고 법체계를 무너뜨린 최악의 행위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하며, 만약 그가 대한민국의 헌법이 유린당한 행위를 찬성한다면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을 수는 없다”는 말은 그 말 자체로도 틀린 말이다.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라고 한들, 과거 국가를 유린한 행위에 대해 비판을 하는 자체는 매우 공적인 일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다는 사적 행위로 연결한 것은 애초에 논리적 개연성도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적 감정과 공적 업무의 경계를 허무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인간적인 감정을 놓고 볼 때, 아무리 공적인 입장에서라고 하더라도 자기 아버지가 한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안철수 후보가 박후보의 사과를 두고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관점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어찌 자식 세대의 발전이 있겠는가? 박후보 본인의 말대로 자신의 아버지가 헌법을 유린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장애가 되는 짓을 했다면, 그 자식이 그걸 비판하는 것은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는게 아니라 (그게 어떤 것이건) 자기 아버지의 노력이 스며있는 대한민국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훌륭한 행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후보는 이러한 비판이 자기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이라는 사적 감정과 행위로 연결지었다. 이는 결국 박후보의 역사 인식이 박정희 정권 당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안철수 후보가 박정희의 무덤을 방문해 역사에서 배우겠다고 방명록을 작성한 것이 약간의 논란이 되었다. 이것이 박정희를 비판한 것인지 아니면 옹호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 박근혜 후보의 사과 논란을 놓고 보면, 적어도 박후보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박근혜 후보가 해야 하는 일은 올바른 인식으로 역사에서 배우는 것

 

거듭 말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자기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을 필요는 없다. 누구도 그런 사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민이 박근혜 후보에게 요구하는 것은,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에 걸맞는 역사 인식을 기반으로 박정희 정권의 수 많은 위법 행위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함과 동시에 박후보 본인이 헌법 정신에 걸맞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공적 영역에서 분명히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박근혜는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이 없다.

 

Barr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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