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대 삼성 재판, 그리고 배심원제에 대한 단상

2012/8/27 by

애플 대 삼성 재판, 그리고 배심원제에 대한 단상

 

 

제가 법률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니 법과 관련한 지식 자체는 얕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논쟁 중에는 변호사라고 하시는 분이 무작정 감정적 대응을 하시거나 배심원제를 무조건 비난하기도 하는 걸 보니 법률 전문가라는게 꼭 법제도에 관한 객관적 판단을 제공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그런 “일반인”의 시각에서 배심원제에 대해 잡담을 해보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세계의 법률 체계는 크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뉘어 집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중심이 되는 대륙법계는 흔히 말하는 성문법 체계를 갖추고 있고 영미법계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불문법, 판례법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성문법은 미리 법을 다 만들어 두어야 판결이 되는 체계이고, 판례법은 법원 판례가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체계입니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 성문법 체계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륙법계에서는 사전에 법학자들이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법을 만들어 이 법을 제정하며, 그 법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 영미법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1차적인 법원성을 인정한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법의 발전이 법학자 주도로 이루어지지만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법관이 주도하는 것이죠.

 

특히 영미법계에서는 일반인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실질적인 법의 형성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는 법이라는 것이 사회적 계약이고, 그 사회적 계약은 구성원 개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회계약론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 이념에서는 그 개인이 벤자민 프랭클린이건 아니면 사기 전과 5범이건 간에 그런 사람 모두가 계약과 합의를 통해 국가의 체계를 만들어 내고 이를 발전시켜나간다는게 무척 중요합니다. 애초에 그렇게 성립된 나라거든요. 타국에 의해 독립하고 타국이나 일부 지식인에 의해 민주주의가 성립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긴 민주화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배심원 제도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미국 법체계의 핵심입니다. 성문법 체계에 익숙한 우리가 보기에 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일반인이 어떻게 저렇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심원이 하는 것은 판결이 아니고 평결이라고 합니다.

 

실은 배심원제에서 모든 걸 배심원이 하지는 않습니다. 판사도 참여하죠. 그래서 배심원은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하고, 판사는 배심원의 판단을 토대로 재판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판사가 가끔이지만 배심원의 평결과는 다소 다른 판결을 내리기도 하죠. 배심원이 법률적으로 크게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앞뒤가 안 맞는 결정을 내렸거나 그런 경우 말입니다. 아무래도 논리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보니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하한 경우를 막론하고 판사는 배심원을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그 배심원은 일반 국민을 대표하는 존재이고, 미국의 법체계는 이러한 일반 국민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판결은 바로 이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배심원에 참여하는 국민은 늘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편견이나 선입견과 같은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명제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국민은 이걸 어려서부터 배우며, 배심원에 참여할 때 또 듣고, 재판 중에도 판사가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미국 국민들과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 자신의 정치적 성향 같은 것과 상관 없이 최대한 중립적 위치에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평소에 배심원 제도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던 미국인 조차, 배심원으로 지명되면 최선을 다합니다. 그건 그들의 헌법 정신이고, 그들의 나라를 이루는 뼈대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미국 법체계에서 연방 지법 재판은 배심원이 평결을 합니다. 그건 어제 오늘 사이에 결정된게 아니고 수백년을 지나온 사안입니다. 연방 지법에 제소된 모든 판결은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문법 체계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아무리 배심원 제도에 비판을 해도, 또는 미국인들 스스로가 비판을 해도, 그것은 앞으로도 수백년간 바뀌지 않을만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배심원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 국민이 담당합니다. 물론 그가 우연히 해당 분야 전문가일 수도 있지만, 따로 해당 분야 전문가가 배심원이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해당 분야 전문가를 배심원으로 지명하기로 하는 순간, 그 배심원은 더 이상 일반 국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법을 만들어 가는 배심원이 일반 국민이 아니라면, 해당 분야의 법체계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끼리의 잔치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미국의 법체계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일반인 배심원” 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지극히 일반적인 시각에서, 어찌보면 해당 분야에 대해 무지한,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사안을 판단합니다. 이들을 논리적으로, 혹은 일정 부분 감정적으로 설득해 내는게 변호사가 할 일입니다. 한국의 법정에서 변호사는 판사를 설득합니다.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법논리가 통할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연방 지법에서 변호사는 배심원을 설득해야 합니다. 전문적인 설명보다는 “일반인이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는 증거에 기반한 입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멀티 터치 핀치 줌” 이라는 요소가 이번 애플 대 삼성 재판에 있습니다. 많은 한국 분들이 “너무나 명백하게 선행 기술이 존재하는데 이 특허를 인정해준 이번 배심원은 자격 미달”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분들이 예를 드는 것 중에 TED 영상에도 나온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허공에 대고 하는 핀치 줌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는 거냐는 것입니다. 알면서 그랬다면 편파 판정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핀치줌은 “멀티 터치 핀치 줌” 이 아니라 그냥 “허공에 대고 하는 핀치 줌”이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선행 기술로 보기 어려울 거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그게 실제로 선행 기술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느냐는 점입니다.

 

공판중심주의라는게 있습니다. 모든 증거와 심리를 정식 재판 과정에 집중시킨다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법적 절차에 따라 법정에 제출된 증거만을 토대로, 그 증거를 가지고 하는 심리와 입증 과정에 따라 재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설령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가 유명한 영화라고 할지라도, 그게 법정에 제출된 증거가 아니라면 그걸 토대로 법적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죠. 그러니 “그런 널리 알려진 사실조차 고려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배심원” 같은 건 애초에 되지도 않는 이야기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배심원을 설득할 증거가 제출되고 그것이 입증되었느냐, 그리고 그것이 혹시 무시되거나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았느냐입니다. 이와 관련해 배심원이 일부 사안을 건너뛰었다(skipped)는 보도가 나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해당 기사 원본을 보시면 그 사안을 건너뛰어서 대충 결론을 내버렸다고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 건이 논의를 교착 상태에 빠지게 했기 때문에 해당 논의중 스킵했다고 되어 있고, 문맥상 첫날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첫날 논의 중 해당 사안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일단 스킵하고 다른 것들을 먼저 결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참고, 해당 CNET 기사 원본 링크 : http://news.cnet.com/8301-13579_3-57500358-37/exclusive-apple-samsung-juror-speaks-out/ )

 

상식적으로 볼 때 배심원이 특정 사안이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스킵하고 뒤에 논의도 안하고 대충 흐지부지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자신들이 어떤 논의를 했는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냥 대충 스킵하고 끝냈다고 보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따라서, 나름대로의 논의가 이후 이어졌고, 여기서 얻은 결론으로 해당 평결이 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결국, 삼성측 변호사가 “일반인 배심원”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이고, “일반인 배심원”이 봤을 때 명백할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것입니다. 위의 링크에 보시면 삼성이 애플을 고소한 표준 특허건과 관련해 결정적 증거가 됐다는 삼성 직원의 답변도 나와 있습니다. 최소한 이런 증거나 논의 과정에 우리가 직접 참여하고 검토하지 않은 이상, 무작정 배심원을 성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배심원도 인간이고, 부족한 인간 맞습니다. 그래서 이 배심원 논의는 때에 따라 전원일치가 되야 하는 경우도 있고 다수결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재판의 경우 전원일치가 되지 않으면 hung jury 가 되어 재판이 무효가 되고 다시 배심원을 선정해 재판을 진행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심원은 가급적 무효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압박, 그리고 그런 압박에 밀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압박, 이렇게 두 가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 안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죠.

 

일부의 주장대로 이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치열한 과정은 그 배심원들 말고는 누구도 모릅니다. 심지어 해당 재판을 주재한 루시 고 판사조차 모릅니다. 그저 그들이 미국의 헌법이 요구하는 정신에 따라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심리 내용을 토대로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논리적인, 하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시각에서 평결을 내렸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결론이 옳건 그르건, 그렇게 결론을 내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 미국의 법 체계이고 헌법 정신입니다. 그리고 그걸 따라야 한다는 것은 삼성이 평결을 받기 전에도, 재판에 임하기 전에도, 맞고소를 할 때에도, 심지어 삼성이 해당 제품을 미국에 팔기 전부터도 알려져 있었던 사실입니다.

 

참고로 배심원제와 공판 중심 주의에 대한 읽어볼만한 포스트를 우연히 발견해서 여기에 링크로 달아 봅니다. 우리가 성문법 국가에서 살아와서 미국의 법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이런 체계에 대해 이해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배심재판(국민참여재판)과 공판중심주의 재판의 개선을 바라며” : http://drspark.dreamwiz.com/cgi-bin/zero/view.php?id=sp_freewriting&page=1&sn1=&divpage=1&sn=on&ss=off&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413

 

Barr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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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서로 상이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북미와 유럽사람들은 대충대충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특허를 부정할 수는 없죠.
    그 기술이 당해 산업분야에서 어떤 신규성과 진보성을 가지고 있는냐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냥 어디서 보았다는 이야기로 특허성을 부정하는 것은 특허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심원의 평결이 재판부의 최종판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두고봐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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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모니

    미국의 배심원제도가 형사재판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민사재판에도 배심원제도가 있는 줄은 이번 소송때문에 처음 알았네요.
    하지만 이번 특허소송은 1심만 배심원판결이고
    2심부터는 연방법원의 판사판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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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모니

      공판중심주의는 당연한 이야기죠.
      예를들어 경찰이 불법도청으로
      어떤 사람의 죄에 대한 증거를
      입수했다 해도
      재판정에 증거로 쓰이지 못하기 때문에
      판결에서는 무죄로 나올수도 있죠..
      즉 재판정에 증거로 채택되느냐 마느냐가 공판중심주의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삼성이 불리한 점이 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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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ommoKim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배심원 제도의 문제점까지 들먹이는 우리나라 언론과 네티즌들이
    이 글을 꼭 한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감정적이고 편향적인 건 미국 배심원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과 네티즌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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