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슬로건 제안 [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
18대 대선 주자의 면면히 가시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대선 주자는 대선 슬로건을 발표하고 있다. 손학규 후보가 가장 먼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박근혜 후보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손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은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가장과의 저녁 시간, 여가 및 개인의 삶에 활용해야 할 저녁 시간이 일에 빼앗겨 버린 현재까지의 우리 모습에 대한 반성이다. 박 후보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슬로건 자체로는 그럴듯 하지만 이 슬로건이 지향하는 바인 변화, 민생, 개인화라는 세부 지향점과는 딱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듯 보인다. 그 밖에 정세균 후보의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 조경태 후보의 “민생 통합 대통령, 국민 통합 대통령” 등도 등장했다.
대선 슬로건은 그 자체로 후보의 이미지를 결정짓고,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슬로건, “Yes, we can”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강렬하고 심플하며 의미있는 슬로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나름대로 하나의 슬로건을 궁리해 보았고, 이를 야권 후보에게 헌정한다. 누가 이 슬로건에 관심을 둘지는 몰라도 하나의 참고가 되고 나아가 실제 슬로건으로 채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여권 주자가 이를 사용하는 것은 사절이다. 내심으로는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교수가 이를 사용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너무 큰 꿈인지는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제 이 슬로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대선 슬로건 제안 – 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
제안하는 슬로건은 “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다. 이 슬로건이 가리키는 바는 상생, 복지, 통합이다. 내가 살겠다고 남을 죽이거나, 내가 더 잘살겠다고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도 잘 살고 남도 잘 사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잘 살고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생겨 모두가 더 잘 살게 되는 그런 나라를 말한다. 이 슬로건이 왜 상생, 복지, 통합을 가리키는지를 설명해 보겠다.
함께 잘사는 우리나라 – 1. 복지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단지 돈이 많은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잘 산다는 말은 곧 부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삼시 세끼 걱정 없이 먹고, 아이들 학교 잘 보내고, 장성한 자녀가 걱정 없이 취직해서 자식 키우며 오손도손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잘 산다는 말은 행복한 삶을 가리키게 마련이다. 행복한 삶은 누구나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적어도 불행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될 것이다. 국가가, 그리고 사회가, 개개인의 삶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곧 복지를 의미한다.
복지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누구나 자신의 최소한의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삶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만 해 주는 것을 우리는 사회 안전망이라고 하는데, 이는 복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이 새롭게 꺼낸 개념이다. 복지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일정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까지의 의무교육, 의무 급식, 노년층에 대한 의무 급식과 주거 지원, 의무 보육 등과 같은 개념이 단계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재원 마련이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박원순 시장을 통해 전시성 행정이나 불필요한 부분을 절약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22조원을 강바닥에 쏟아붇는 것도 보지 않았는가. 물론, 궁극적으로 누진율의 확대 및 종부세 재도입과 같은 부유세 도입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다음에 설명하는 상생을 통해 가능하다.
함께 잘사는 우리나라 – 2. 상생
지난 4년여간 우리는 신자유주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그를 선출할 때 우리는 “내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다. 그 결과 그는 우리에게 내가 잘 살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는 사회를 돌려주었다. 결국 우리는 나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배치되는 이들을 밀쳐내고, 짓밟고, 증오하고, 배척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불신하게 됐고, 철거 현장과 산업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고, 우리의 자녀들은 무한 경쟁에 떠밀려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있다.
이렇게 경쟁을 통해 남과 충돌하고 밀쳐내던 것을 그만두고, 함께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자는 것이 바로 상생이다. 이는 부자더러 일방적인 희생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민들도 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질시나 배척을 그만두고 함께 우리 사회를 이루는 동반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부자가 자신이 얻은 혜택을 부정하고 그게 다 자기 능력으로 얻은 것이니 나 혼자 다 갖겠다고 한다면 어느 서민이 부자를 상생의 대상으로 보겠는가? 부자가 서민을 깔보고 업신여기며 서민과는 유리된 삶을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화합과 신뢰를 통한 상생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결국 상생의 시작은 나눔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겠다고 하는 자세, 그것도 찔끔찔끔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나눔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누진율의 확대다. 혹자는 그냥 기부를 하면되지 왜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고 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금을 더 내면 되지 왜 굳이 복잡하게 기부를 하려 하는가? 세금을 내도 국가가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기부를 하면 기부를 받은 단체가 이를 100% 투명하게 운용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 시스템과 법률로 움직이는 국가보다 개개인의 양심에만 맡기는 자선단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비리와 부패를 보았는가? 또 어떤 이는, 나는 기부도 하기 싫은데 왜 의무적으로 세금을 내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결국 함께 잘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다. 나만 잘 살겠다는 것이다.
결국, 함께 잘 사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면, 당연히 누진율 확대를 통해 지니 계수를 낮춤으로써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쪽으로 이행해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던 것을 그만두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신뢰하고 존중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생이다.
함께 잘사는 우리나라 – 3. 통합
복지를 통해 상생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통합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슬로건의 “우리나라”다. “내 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의 나라”, “우리나라”다. 우리는 단순히 나의 복수형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민족,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회사 처럼 우리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사용하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라는 단어는 내가 속한 집단을 가리키는 단수 대명사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것은 개개인의 내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속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중요하며, 그 대한민국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것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나라임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 “내 꿈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설명에 “개인화”라는 말이 있다. 딴에는 개인화된 사회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실 우리 국민은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말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 개인화는 결국 좋게 말해 개인주의, 바꾸어 말해 이기주의로 이어진다. 나만의 이익, 나만의 부, 나만의 명예와 지위를 원하는 새누리당다운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으로는 통합을 이룰 수 없다. 결국 분열과 소외, 외로움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 우리가 함께 나누어 상생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모두가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라는 슬로건이 의미하는 바다.
이렇게 “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라는 슬로건에는 결국 복지 사회, 상생하는 사회, 이를 통한 사회 통합이 모두 담겨 있다. 이렇게 복지, 상생, 통합이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소외되지 않고, 외롭지 않고, 반목하지 않고, 남을 짓밟거나 짓밟히지 않고, 우리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미래일 것이다.
함께 잘 사는 우리나라, 과연 어느 후보가 이루어 줄까? 나는 그것이 참으로 기대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약간은 걱정했던 박원순 서울 시장이 불과 일년도 안된 시간 안에 서울을 이렇게 바꾸고 있듯이, 새롭게 대통령이 된 우리 후보가, 분열과 반목, 경쟁과 소외로 상처받았던 우리나라를 새롭게 바꾸어 줄 것으로 믿는다. 그를 위해 이 슬로건을 제안한다.
Barry Lee
부연 설명> 이 슬로건의 기술적 사항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1. 대선은 미래의 비전 제시가 중요하다. 현 정권 타파에는 비전이 없다. 따라서 이렇게 비전이 있고 긍정적인 미래 지향적 슬로건이 필요하다.
2. 중도층 흡수 없이는 대선을 이길 수 없다. 중도층이 바라는 것은 비판이나 타도가 아니다.
3. 박근혜 후보가 고맙게도 개인화를 들고 나왔다. 이것과 차별화하고 자연스럽게 대비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화 = 노년층의 소외라는 점을 부각시켜 우리 = 세대간의 화합으로 끌어갈 수 있다.
4.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통해 애국심을 중시하는 보수층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다.
5. 복지를 위한 재원 마련을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부드럽게 유도해 나갈 수 있다.
6. 이 슬로건 채택시 실제 유세 현장 등에서 “우리 함께!” 라고 후보가 선창하면 지지자들이 “잘살자!” 라고 따라하게 함으로써 이 슬로건을 내세운 후보 = 잘 살게 해 주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축구와 사진을 사랑하며 트위터를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 어머니와 아내, 두 딸들을 사랑하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빠. 그러나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늦깎이 열혈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