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공감, 박근혜와 안철수, 그리고 문재인
오늘, 일을 하다가 컴퓨터에 작업을 하나 돌려놓고 시간이 좀 있어서 일련의 트윗을 했습니다. 그 동안 생각해 오던 부분을 사전에 정리해서 글로 쓰는게 아니라 무작정 두서없이 트윗을 한 것입니다. 워낙 요새 글이 잘 안 써지기도 하고 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입니다. 다음은 그 트윗들을 옮겨 온 것입니다. 약간의 띄어쓰기나 맞춤법 수정, 140자에 맞추기 위해 생략했던 단어를 넣은 것 외에는 트윗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한국도 야심한 시각이고 하니 잡설 몇 가지만 좀 늘어놓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불쾌하신 분도 계실 테고 공감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솔직한 저의 생각을 말한다는 생각에서 하는 트윗입니다. 전혀 정제되지 않은 잡설입니다.
박근혜 지지율이 45%를 넘더군요. 새누리당 지지율도 40%랍니다.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지난 4년여간의 실정에 대한 책임이 있는 세력이 새누리당인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총선에서도 어째서 박근혜가 이길 수 있었을까요?
제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박근혜는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바뀌었습니다”, “잘하겠습니다”, “믿어 주세요” 같은 소리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많이 힘드시죠”, “많이 아프시죠”, “야당 때문에 피곤하시죠” 같은 소리였죠.
어제 나온 나꼼수를 들어보시면 박근혜가 사이월드 미니홈피에 밝혔다는 근본적 대책이라는 것도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무지한 시민의 입장”의 마음을 그대로 읊어댄 것 뿐이죠. 거기에는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뿐입니다.
좀 뜬금없을지 몰라도,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말을 한다고 하죠. 남자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고, 여자는 마음을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요. 아내가 시어머니와 다툼을 한후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건 그 마음을 알아달라는 건데 남편은 꼭 해결하려다가 싸움이 나곤 하니까 말입니다.
대체로 감정적인 사람의 경우 이런 공감에 크게 좌우됩니다. 반면 논리적인 사람의 경우 분석하고 해결하려고 하죠. 공감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해결책의 제시를 위한 토론은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이지만, 실제로는 아프고 힘든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니 박근혜가 삶이 피곤한 빈곤층, 논리적 사고에 약한 이들,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분들이나 마음이 외로운 노년층에 더 크게 어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진보가 이들에게 먹히지 않는 이유는 진보가 결국 옳은 해결책을 내놓을지 몰라도 공감은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진보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도 공감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어설픈 당권파 지지자들이죠. 한동안 이정희 지지하던 사람들 보면 이정희가 비맞으며 찔찔짜는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정희를 지지하는 이유도 이정희가 옳아서가 아니라 (그게 꾸며진 모습이건 아니건) 우리 아픔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이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아픔을 함께 해준 이정희인데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아픔을 함께 해줬으니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네, 바로 공감을 해줬다는 거죠. 결국 박근혜 지지자와 똑같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데 이런 감정적인 분들 마저도 민주주의 진영에서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진영은 민주주의의 속성상 서로의 “논리”를 경청하고 토론하고 양보하고 화합해야 하죠. 감정이 낄 자리가 적습니다. 이게 바로 민주진영의 약점이고, 모든 선거에서 그렇듯이 이번 대선에서도 화두가 되겠죠.
안철수교수가 지지를 얻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바로 젊은이의 아픔을 “공감”해줘서 입니다.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한게 아니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해 준 겁니다.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줘야 합니다. 안교수는 젊은이들과의 토크콘서트를 통해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공감”해준 것입니다.
이쯤되면 민주진영의 대선 후보들이 뭘 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먼저 국민의 아픔을 “듣고”, 그걸 “공감”하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누고”, 그런 다음 그 해결책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하고, “확신을 심어”주고, “앞에서 끌고 나가야”합니다. 사실 그게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이죠.
미국의 경우 그걸 잘 한 오바마가 4년 전에 당선이 됐던 것이고, 그걸 평상시에 잘 하는 공화당이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으며 계급 배반 투표를 하게 만드는 것이죠. 새누리당이 잘 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그걸 못하면 민주당, 민주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도 패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오늘의 잡설은 여기까지. 끗
즉흥적으로 나오는 데로 쓴 트윗이다보니 논리의 전개 과정이나 문단의 구분 같은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핵심 내용은 그러려니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바로 “공감” 입니다.
영어로 Sympathy 혹은 Empathy 라고 하는 이 공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께 느껴주는 것, 혹은 다른 사람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굽쇠 하나를 치면 다른 하나가 함께 우는 것을 가리켜 공명이라고 하듯이, 한 사람의 마음이 울리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함께 울리는 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주인공의 아픈 마음을 느끼며 눈물 짓는 것, 울부짖는 피해자를 보며 함께 아파하는 것, 수십년만에 만난 이산 가족의 모습을 TV로 보며 울고 웃고 하는 것, 그런 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감정 이입을 하고 공감하는 것을 가리켜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남자라면 설령 공감을 했어도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남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했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설령 남자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사람다운” 일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고통과 슬픔, 기쁨과 분노, 그리고 즐거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누기를 바라고, 누가 내 감정을 나누어 주면 감정적 엔트로피가 해소됩니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 감정을 나누고 공감해 주는 이들을 우리는 저절로 신뢰하게 됩니다.
여기서 유력한 대선 주자 중 한 분인 문재인 의원님에게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나름 공감을 “연기”하는 걸로 보이는 박근혜의원이나, 그래도 나름 20대의 아픔을 “공감”해 온 안철수씨에 이어 지지율 3위를 차지하신 문재인 의원님, 의원님은 국민의 삶을 “공감”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국민의 생각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계십니까? 의원님의 살아온 인생을 보아하건데 분명 “공감”을 하고 계실 듯 하지만, 겉으로는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의원님의 무뚝뚝한 경상도 싸나이다운 “남자다움”이 그걸 막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공감에 대한 부분, 많은 정치인들이 깨달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감을 한 후, 그 공감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방향의 정치를 하기를 바랍니다.
Barry Lee






축구와 사진을 사랑하며 트위터를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 어머니와 아내, 두 딸들을 사랑하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빠. 그러나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늦깎이 열혈남.
안녕하세요, 배리님.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공감”.. 참으로 “공감”되는 화두입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 있어서도
지도자의 능력 중 대중들에게 어필되는 가장 큰 요소가
“공감”이 아닐런지 생각되네요.
안녕하세요.
네.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공감일 겁니다. 그런데 제대로 공감을 하는 정치인은 드물죠. 오히려 남이 나를 공감해 줄 것으로 믿는 자기중심적인 인물들이 많고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저도 정말 얼마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나름 규모있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 일을 하면서 개발 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기술자들은 무척이나 논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저에는 감성적인 의사 결정 메커니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성에서 비롯된 결론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온갖 수사를 가져다 붙이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이러한 논리의 홍수와 전투에서 사람들을 합의에 도출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덜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러한 논리의 밑에 있었던 감정을 끄집어내서 같이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는 정말 이러한 감정의 공감이 극대화하여 동작하는 무대라고 봅니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성의 정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뱉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요)
진보 진영은 사실 그닥 논리적이지도 못해왔습니다. 감성적인 면에서도 공감이라기보다는 아지테이션과 샤우트만 있었죠.
어차피 논리라는 것은 오차와 예외를 거의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게 논리로 상대를 넘어뜨리고 설득하기는 어렵고,
감성과 공감은 추운 겨울에 손부터 잡아서 녹여주기 시작하듯이 다양한 생각들을 가능한 부분에서부터 공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댓글도 쓰다보니 길어지고 두서없어지네요.
여하당간 쥔장님의 글에 크게 감성적으로 동조하고 공감합니다. ㅎㅎㅎ
공감도 중요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래요. 아프죠? 이해해요.
그래서 요즘 가장 싫어하는 책 중에 하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요. ㅋㅋㅋ
정치적인 공감을 좀 구별하는 국민들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