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 아니라 사람이다

2012/6/1 by

고객은 왕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문구가 있다. 바로 “고객은 왕”이라는 문구다. 고객을 왕 처럼 모시라는 뜻일 것이고, 그만큼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문구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대체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인 듯 하다고 이야기들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마케팅/세일즈 서적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서양에서도 Customer is always right 이라는 문구가 있고, 심지어 Customer is King 이라는 문구까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제 세계적으로 많이들 통용되는 말인 듯 하다.

 

그런데 이 문구가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일본에서 물건을 구입해 보면 고객이 무조건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적어도 고객이 왕이라고 판매자가 생각한다고 치더라도, 고객 역시 자기가 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물건을 구입할 때 판매자가 고객에게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면, 고객도 판매자에게 굽실거리고 인사를 한다. 일부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서로서로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반면 한국에서는 어떨까? “안녕하십니까 고갱님, 고갱님께서 구입하신 저희 물건께서는 고갱님 댁 경비실님에게 배송중이신 것으로 택배회사 기사님을 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상품께서 안전하게 배송되실 것으로 예상되시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는 도대체 주어가 누구고 존대를 받아야 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고객은 자기가 왕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대화를 듣다 보면 상품이 왕인지, 택배회사 기사님이 왕인지, 경비실님이 왕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일단 고객이 왕이라고 치고, 그렇다면 고객은 정말 왕일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세상 누구도 왕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객은 돈을 내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사람이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돈을 가진 사람은 왕이나 다름 없다. 그러니 고객이 왕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 민주주의를 접어두고 자본주의를 선택한 셈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자본주의의 선택이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혹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같은 것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동의어도 반대말도 아니다. 전혀 다른 관점의 사상이다. 말하자면 평면상의 X축과 Y축처럼,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자본주의이면서 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반대로 민주주의이면서 사회주의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도 극단적 자본주의나 극단적 사회주의도 있지만 수정 자본주의도 있고 온건 사회주의도 있다. 캐나다나 북유럽 같은 나라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사민주의 국가라고 하기도 한다. 사민주의란 사회민주주의다. 흔히 생각하듯 우리나라나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르다. 반대로 자본주의이면서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나 전제국가도 존재한다. 과거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자기들 멋대로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또 선거로 선출됐어도 헌법과 민의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국가를 통치하면서도 자본주의일 수는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이들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선호할 지도 모른다. 독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의 독점이 더 쉬우니 말이다. 심지어 자본 스스로가 독재를 하는 경우도 존재하니 말이다.

 

각설하고, 이렇듯 고객은 왕이라는 문구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민주주의를 접어두는 것이 되는 걸까? 민주주의의 원칙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지만 대체로 국민 주권, 국민 참여, 국민 존중, 만민 평등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흔히 회자되는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즉 국민 존중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따라서 고객과 판매자의 입장에서 주도권, 즉 돈을 가진 고객을 왕, 즉 주권자로 모시라는 말은 민주주의 원칙과는 분명히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판매자가 자영업자가 아니라 자영업자가 고용한 직원이라면 이는 더 분명해 진다.

 

사실 고객을 왕처럼 모신다는 말 자체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물건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재화를 지불한 사람이 합당한 댓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불공정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문제는 고객을 왕처럼 모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지불한 재화가 왕처럼 대접받기에는 합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식당에서 1인당 15불과 팁 $2.50 을 지불해 총액 $17.50을 지불한 이에게 제공된 식사에는 이미 다양한 원재료와 주방장의 조리 기술, 안락한 조명과 소파, 분위기 있는 음악이라는 물건과 서비스의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웨이트리스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기껏해야 팁 $2.50에 시급을 합해 대략 $4.00 정도라고 보아야 한다. 그나마 팁도 주방장과 나누는 식당도 있으니 $2~$4 정도가 웨이트리스에게 지불되는 금액이다. 당신에게 누군가가 $2~$4를 주면서 1시간 동안 왕으로 모시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어라고 하겠는가? 아마도 나라면 그 두 배 금액을 줄테니 나를 왕처럼 모시라고 할 것 같다.

 

당신이 진정한 자본주의자라면, 그러면서도 왕처럼 대접받고 싶다면, 진정한 왕의 가치만큼의 재화를 대접하는 이에게 지불하면 된다. 그리고 국민 스스로가 국가의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잠시 그 주권과 평등과 존중의 가치를 내려놓고 남을 왕으로 모시게 하려면 몇 백 달러는 커녕 수만 달러를 지불한다고 해도 그 가치가 합당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민주주의의 가치는 소중한 것이니까.

 

이 문제의 해법은 의외로 이 말이 시작됐다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양식있는 고객은 판매자가 제공하는 왕과 같은 대접에 대해 오히려 더욱 정중하게 감사를 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나에게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해줬으니 나도 당신을 존중하고 감사한다는 자세다. 인간에 대한 상호 존중, 오히려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을 만든 이들이 더욱 민주주의적이다. 사실 이런 상호 존중의 전통이 있으니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인이라고 다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한 이들도 많다.

 

아무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객이든 판매자든, 가게 주인이든 직원이든, 회사의 사장이든 말단 사원이든, 모든 이는 결국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자,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인권의 가치다.

 

고객이 내 물건을 구입해 주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바탕에 깔고, 거기에 나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해 주는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진심으로 담아내면 될 일이다. 반대로 고객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바탕으로, 나에게 좋은 제품과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 이에게 감사와 겸손의 마음으로 대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누가 왕일 필요도, 노예가 될 필요도 없다.

 

고객은 왕이 아니라 사람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판매자 역시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 판매자가 노예인 것도, 왕의 백성인 것도 아니다. 서로가 사람이고,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인권적 관점이 불편한 자본주의적 독자를 위해, 미국식 표현인 Customer is always right을 비판한 글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원문은 “Top 5 reasons why “The Customer Is Always Right” is wrong” 이라는 이 글 제목을 누르면 볼 수 있다. 이 글은 자본주의 옹호자에게 익숙한 방향에서 왜 이 말이 옳지 않은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 가 틀린 5가지 이유

 

1. 직원을 불행하게 만든다. (It makes employees unhappy)

 

2. 거친 고객에게 부당한 이익을 준다. (It gives abrasive customers an unfair advantage)

 

3. 어떤 고객은 비즈니스에 좋지 않다. (Some customers are bad for business)

 

4. 이는 결국 나쁜 고객 서비스를 초래한다. (It results in worse customer service)

 

5. 어떤 고객은 그냥 명확하게 틀리다. (Some customers are just plain wrong)

 

 

결론적으로 고객은 왕이라는 문구는 그 유래야 어쨌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도,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도 모두 틀린 말이다. 그보다는 고객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고객도 판매자를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도 옳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서로 윈-윈 하는 합리적 비즈니스 전략이다.

 

고객은 왕이 아니라 사람이다.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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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1. 전. 항상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를 말 버릇으로 합니다. 다만 저는 매우 엄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왕은 아닙니다만 저는 제가 고객이라는 사실에는 매우 엄격합니다. 다시 말해. 제가 가격을 치른 바에는 정확하게 기대를 부응해주기를 바라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합리적인 해명과 납득 가능한 solution이 제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된다면 진노함니다. 그것은 제가 왕이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네들이 약속한 가격과 조건에서 아긋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설령 그게 그네들이 감내하기에 왕의 구두에 입을 맞추는 듯하더라도 말이죠.

    대신 저는 프리미엄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Freemium 모델에서 유료를 택하는 경우가 많고 덤핑을 하는 곳은 히합니다. 봉건적인 왕과 신하의 주종관계는 죽었습니다. 대신 우리가 사는 곳은 21세기이고 계약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계약을 맺는 당사자인 고객도 바뀌어야 하지만 요즈음에는 계약의 또 다른 상대방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신의 성실의 측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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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rry Lee

      거래 당사자간 신의 성실은 분명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를 보아도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해당 거래에 왕으로 대접받기를 약속하였는지, 그리고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게 부당거래는 아닌지, 그 약속 당사자가 실제 왕으로 대접하며 노예 취급을 받아야 할 이(직원)가 아님에도 그 약속을 한 사업자 때문에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닌지. 이런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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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살람

      Freemium 이 아니고 premium 이에요 그리고 굳이 영어를 쓸 상황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영어 쓰는것 보기 않좋습니다 틀렸을때는 안 쓴것보다 더 무식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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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연구원

        쓰는것→쓰는 것, 않좋습니다→안 좋습니다, 틀렸을때는→틀렸을 때는, 쓴것보다→쓴 것보다, 무식해보입니다→무식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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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쏘쏘

    저는 고객은 왕이다란 말 정말 싫어합니다.
    그 말하는 사람치고
    예의바르거나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추천누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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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객”이 왕이 아니라 “지불하는 돈”이 왕인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돈”주의 사회가 된 것일까요.
    “이 가방은 부드러운 가죽이셔서 촉감이 좋으시구요, 120만원 이십니다”
    재화와 화폐가 너무 높으셔서 삶이 괴롭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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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namja2yagi

    민주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고객은 왕이 아니라 사람이 맞습니다만
    자본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고객은 왕과 같이 해야 다음에도 또오니까 왕처럼 대접해야 맞는것이겠죠.
    하지만 고객과 직원 또는 업주는 바뀔수가 있는것이니 서로 존중해 주는것이 결국 윈윈하는 결과를 낳겠죠.
    그렇지만 업주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고객은 왕으로 모야야 일단 성공할수 있을 요건이 되므로 왕으로 모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지만 장사를 하다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직원도 언젠가는 고객이 될수도 있는것이고 고객이었던 사람이 직원이 될수도 있는것입니다.
    또한 거꾸로 내가 다른데서 고객이 될수도 있는것이기에 사람은 막행동하면 안되겠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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