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씨의 부산대 강연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단상

2012/5/31 by

 

 

 

안철수씨의 부산대 강연이 화제가 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이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이야기를 했다.

 

- 일자리가 선순환되는 복지, 출발선이 같고 경쟁할 때에도 특권과 반칙이 없고 패자에게 재도전 기회가 주어지는 정의,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평화

- 소수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 정당은 민주적 절차 준수가 더 중요하다.

- 진보 정당은 인권, 평화와 같은 잣대를 북한에게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

- 개인의 사상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지만 공당이나 정치인은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

- 이념 논쟁은 적절하지 않다.

 

그의 이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한국의 보수나 진보와는 좀 다른 스탠스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온건 좌파 정당 보다 아주 약간 우편향 되어 있고, 미국의 민주당 안에서 조금 좌파적 시각을 가진 쪽으로 생각된다. 딱히 진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진보적 스탠스라고 충분히 간주할 만해 보인다.

 

사실 그의 이런 이야기 중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 동안 내가 해왔던 이야기와 일치한다.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바로 경쟁과 패자를 논한 부분이다. 이 관점에서 그는 자본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그의 이런 점이 정치적으로 볼 때 약점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내 스탠스와는 조금 다르다. 나는 죽도록 경쟁하지 않아도 웬만큼 살 수 있는, 혹은 경쟁할 능력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게 경쟁이 아니라 노력이 되고, 그래서 그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뒤에 쳐진 사람도 그냥 그만큼만 이룬 사람인 것이지 패자가 되지 않는 그런 사회이기를 원한다. 물론 너무 추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고, 사실 따지고 보면 안철수씨의 생각이나 나의 생각이 별 차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통진당 사태에 대한 언급과 스탠스는 나의 생각과 놀랍게도 많이 일치한다. 나는 당권파가 주사파건 아니건, 그들이 종북이건 아니건, 수령님 만세를 외치건 안 외치건 그건 그들의 사상의 자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짜피 대한민국은 이제 그런 혹세무민에 넘어갈 만한 수준은 지났다. 그들이 소수의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런 상황을 품고 소화해 나갈만한 역량까지는 갖추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런 상황 안에서 그들의 그런 생각은 사상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국민의 세금을 보조받고 국회에 의원을 배출하는 정당인 만큼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와 하고자 하는 바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대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대의 민주주의란 국민의 뜻을 대리하는 대표자가 국사를 논하는 것이다. 국민이 자신의 대리자를 선출해야 하는데 그 대리자가 국민에게 본심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사기를 넘어 범죄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실은 자기 주머니를 살린 가카라던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했지만 실은 자기가 권력을 잡는 결단을 내린 박정희, 전두환이 나쁜 놈인 이유도 그래서이다.

 

통진당 당권파도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정당을 유지하고 국회의원이 되어 국사를 논하고 싶다면, 그저 자신들의 생각을 투명하게 말하면 된다. 국가보안법이 문제라면 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걸 당의 강령으로 내걸고 그걸 철폐하려고 해야 할 일이지, 그걸 핑계로 자신들의 생각을 숨겨서는 안된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야 그럴 수 있다고 양보하더라도, 공공의 정당이 되는 순간 그런 것은 더 이상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권이나 평화와 같은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안철수씨의 말에도 동의한다. 북한 문제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다. 이를 명백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국사를 논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기만이며 눈속임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가 과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되느냐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그가 내놓은 이야기인 합의와 화해라는 키워드에 정치권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가 그만한 결과를 끌어낼 인간관계를 정치권에 쌓아온 것도 아니고, 정치권에는 현재 상호 적대감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내놓은 합의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의 해법이 없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합의와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많은 문제와 비리가 유야무야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그의 해법은 미래에 대한 비전은 될 수 있을 지언정 현재의 걸림돌을 해결할 방안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튼 그가 이상주의자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상황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공포보다는 지혜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비록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런 생각들이 정치권에 더 많이 공급되기를 바란다.

 

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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