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단상 [이제 이정희라는 달콤한 꿈에서 깰 때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몇달전 김진표퇴출운동을 그렇게 하면서 민통당 비례대표 투표 거부를 하자고 난리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민통당을 향해 깽판을 놓으면서도 통합진보당에 그 표를 주자고 하지는 않았었다. 트위터에서는 통합진보당의 앞잡이라는 둥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기는 했지만, 통합진보당을 적극 지지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실은 당시 이미 통진당 내에서 구리 지역의 후보 경선 투표 과정에서 불거진 경기동부연합의 행패로 인해 유시민 대표가 당무 거부를 선언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통진당 역시 당내 계파의 부적절한 행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지할 수 없다”고 트윗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당시에는 적지 않은 분들이 그게 뭔 소린지 모르셨던 것 같다. 그걸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짜피 통진당원이라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도 당시에는 통합진보당이, 적어도 당권파가 이 정도로 막장으로 흐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워낙 하던 짓이 있으니 자기들이 홀랑 잡아먹으려고 하기는 하겠지만, 이처럼 개막장 짓까지 하면서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관악을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정희 대표 부정 경선 문제가 터졌을 때, 나는 더 이상 이들에게 기대를 갖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에게 있던 한 표의 비례대표 투표권의 방향을 결정한 것도 이 때였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앞서 있었던 유시민 당무 거부가 엮여 있는 이들에게 비례대표를 줄 수는 없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그 사건 자체보다도 이정희 대표가 이털남(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울면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을 때 부터였다. 그냥 그렇게 부인하기만 했어도 그 정도의 배신감은 느끼지 않았을 터인데, 찔찔 짜면서 희생자 코스프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기가 오랜동안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조직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에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당내 사정을 잘 모르고, 운동권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 지지자들이나 유권자들을 기망하고, 그렇게 순진한 유권자를 속여서 자신의 조직의 생존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악질적인 언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게 정치일지도 모른다. 어짜피 현대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생활 속에서 정치를 할 수 없는 시민이, 정치를 업으로 삼아 밥 벌이를 하는 직업 정치인에게 권한을 임시로 이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시민의 입맛에 들기 위해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새누리당과 같은 수구 보수 정치 집단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보자고 하는 진보 정당, 진보 정치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흔히 진보에 너무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고 하지만 그건 이번 경우와는 다르다.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살다 보면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못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사과를 하면 용서가 되기도 하고 혹은 응분의 처벌을 받은 후 사면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보 정치인이, 진보 정당이 자신의 지지자를 기망하는 사기를 치고 있다면 이것은 용서가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악질 중에서도 악질적인, 새누리당이나 독재자들 만큼이나 국민에게 해악이 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번 비례 대표 부정 경선 사건이 터지면서 조금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대책 회의가 인터넷으로 생중계 된 것이다. 개중에는 이렇게 자정노력을 하는 걸 보라며 칭찬하는 적반 하장도 있다. 하지만 이 인터넷 동영상 생중계는, 이번 비례 대표 부정 경선의 피해자격인 국참계가 규정으로 끼워 넣어 이루어진 것이다. 애초에 당권파를 중심으로 한 민노당계는 이런 민주성, 진보성 따위는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이루어진 영상 중계를 통해 당권파의 파렴치함, 뻔뻔함, 광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덕분에 그들이 왜 욕을 먹어 왔는지, 왜 많은 이들이 이정희를 믿지 말라고 말했는지 이해하게 된 분들도 늘어난 듯 보인다.
물론, 아직도 “서민을 위해 함께 울어준 우리 이정희 대표님을 구해주세요, 엉엉” 하는 트윗을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서민을 위해 울어준 이정희 대표는, 그 조직의 브레인이라고 알려진 (혹자는 그 역시도 행동대장에 불과하다고 하는) 이석기 당선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대표직을 사임하겠다고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디로, “우리 대표님 엉엉”하는 서민 지지자보다는 자기네 조직의 핵심이 우선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물론 그 “엉엉” 하는 분들에게는 그것조차 숭고한 희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꿈에서 깰 때가 왔다. 달콤한 꿈은 깨고 싶지 않고, 또 깨고 나면 허무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결국 식물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꿈은 깨라고 있는 것이고, 꿈에서 깨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현실이 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결코 진보일 수 없다” 는 것, 그리고 “이정희가 서민을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건 결코 조직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에는 새누리당이 있고, 강력한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있으며,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는 민주통합당이 있고, 작은 숨이나마 쉬어보려고 하는 진정한 진보 정당들이 있다. 그리고, 이정희를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원내 진출과 연립정부 수립을 목표로 국민과 지지자를 기망해 온 당권파들이 존재한다. 끔찍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꿈을 좇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박근혜를 좇으며 “우리 공주님이 다 해주실 거야”를 외치는 이들을 욕할 자격이 없다. 그렇게 하는 이들이나 이정희를 좇으며 “우리 대표님 살려주세요 엉엉”을 외치는 이들이나 다를게 무언가. 결국 둘 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을, 자기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그 허상을 좇고 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현대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이란 바쁘게 살아가는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는, 정치를 업으로 삼은 자영업자일 뿐이다. 그들은 아이돌 스타도, 구국의 영웅도 아니다. 서민을 위해 십자가에 메달릴 메시아도 아니다. 그가 아무리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았고, 그가 아무리 서민의 앞에 서서 전경의 몽둥이를 대신 맞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그런 주제에 내 한 표를 얻어가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 정치인일 뿐이다. 그리고, 이정희가 이루려고 하는 바는 서민이 잘 살게 되는 것 보다는, 그가 속한 조직이 갖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일 뿐이다.
자, 이제 꿈에서 깨어나자. 이제 진정한 본 게임이 시작됐다. 꿈에 미련을 두고 뒤돌아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시 앞을 보고, 다시 뛰자.
배리






축구와 사진을 사랑하며 트위터를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 어머니와 아내, 두 딸들을 사랑하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빠. 그러나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늦깎이 열혈남.
관악을 부정 경선 때 적극적으로 이정희를 옹호했던 유시민 및 참여계는 전혀 책임이 없을까요. 참여계도 이제 와서 문제를 들고나올 자격이 되나 모르겠습니다.
당권파를 옹호하는게 아니라 유시민과 참여계는 민주적 질서를 잘 지키는 진보의 모범인데 나쁜놈에게 당한거로 보아선 안된다는거죠. 둘다 문제 투성이죠. 관악을 사건때 유시민이 하루 반응 없을때 조금 기대를 했는데 하루만에 침묵을 깨고 ‘노무현’에 비교하며 이정희 실드를 쳤죠. 요즘 당권파가 노무현 카드로 자기 변호하는거 참여계에게도 책임이 많은겁니다.
이제 꿈 깨이는 거 같습니다. 전후 사정도 모르고 통진당 응원했네요. ㅠㅠ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