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 마지막 날에 생긴 일
Tweet요 며칠간 골아픈 글만 써댔는데 모처럼 사적인 작은 일화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제가 있는 남 캘리포니아는 12월 중순부터 1월 2일까지 아이들 겨울 방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방학엔 아이들과 저희 부부 그리고 모시고 사는 어머니까지 모두 감기에 걸려 골골거리느라 바람 한 번 쐬지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아내도 쉬고 저도 쉬고 아이들도 쉬는 1월 2일 월요일, 방학 마지막 날에 “눈 보러 가자!” 라고 구호를 외치고 무작정 출발했죠. LA 지역은 워낙 따뜻해서 눈이 절대로 오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 한국에서 눈을 즐기던 아이들에게 눈은 정말 꼭 보고 싶은 그리운 것이거든요.
처음에는 Mt.Baldy 라는 작은 스키장을 향했습니다. 집에서 1시간 내외면 갈 수 있는 거리였거든요. 사전에 알아보니 눈이 별로 없지만 스키장은 연다고 해서 무턱대고 갔죠. 그런데 가 보니 눈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알고보니 리프트를 타고 15분 정도 산 정상에 가야 눈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예년에는 아래쪽에도 눈이 있는데 이번 시즌에는 눈이 거의 안왔고 날도 따뜻해서 다 녹았다는 거죠. 당시 리프트 아래쪽 기온이 15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매우 연로하시고 심장이 약하시기 때문에 곤돌라도 아닌 리프트를 타고 바람이 쌩쌩부는 산을 올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만 차에 계시라고 하고 애들만 데리고 올라갔다 올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그래서 여기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
이번에는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다른 곳을 가서라도 꼭 눈을 보자!!” 라고 구호를 외치며 빅 베어라는 곳의 스키장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차로 1시간 20분 정도, 대략 45마일을 달려가면 된다고 나오더군요. 여기는 해발 2000미터(7000피트) 정도라서 겨울엔 반드시 눈이 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달려가던 중 아내와 어머니께서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다. “우리는 눈도 별로 안 그리운데 그러지 말고 좀 더 가서 팜스프링 근처 아울렛에 우리를 내려주고 아빠와 아이들만 팜스프링 곤돌라를 타고 산 정상에 가서 눈을 즐기고 오라”는 것이었죠. 유명 휴양지인 팜스프링에는 높은 산이 있는데 정상까지 곤돌라가 있어 LA 지역에서 눈을 보러 많이들 찾습니다. 그리고 도시 입구에 유명한 대형 아울렛이 있어서 수 많은 쇼핑객이 찾는 곳이죠. 물론 쇼핑할 돈도 별로 없지만 아무튼 여자들에겐 축구나 골프보다 재미있는게 쇼핑 아니겠습니까? 아이 쇼핑만 한다고 해도 말이죠.
아울렛에 내려드리며 대충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떼우고 저는 다시 아이들만 데리고 곤돌라를 타러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일? 분명 2시에 도착해서 표를 샀더니 3시 40분 탑승 곤돌라 표를 주는 겁니다. 예전에 갔을 땐 바로 탑승 가능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려야 하는 거죠. 그런데 20분을 곤돌라 타고 올라가서 4시가 되면 이미 정상 부근은 어둑어둑 해가 지는 분위기가 되기 때문에 매우 난감해진 거죠.
그런데 갑자기 큰 아이가 버럭 화를 내더군요. 이럴 거면 그냥 집에 가자고요. 원래는 오전에 눈 보고 돌아가자고 했는데 아예 하루가 다 날아가서 게임도 못하게 되니 화가 났던거죠. 그래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고 네 동생이 그렇게나 눈을 보고 싶어하니 화를 가라 앉히자”고 설득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아내가 어머니도 좀 피곤해 하시는 것 같다는 거죠. 그 시간에 갔다가 내려오면 5시가 넘는데 그러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겁니다. 결국 작은 딸을 설득한 후 도로 곤돌라 매표소에 가서 표를 환불하고 차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아이들끼리 말싸움을 하고 있더군요. 아마 아이들도 짜증이 있는대로 났나 봅니다. 원래 이렇게 나오지 않았으면 씐나게 게임을 하며 방학 마지막 날을 장식했을텐데 그것도 못하고 고생은 있는대로 하고 눈도 못봤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화나고 짜증이 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우리가 화를 낼 수록 우리 가족이 진짜로 원하는 행복은 우리에게서 점점 달아나는게 아니겠니? 우리가 행복을 원한다면 약간의 짜증을 내려놓고 서로 시간을 주자”
더 황당(?)한 건 아울렛에 돌아와서였죠. 돈 없어서 아이쇼핑만 한다고 빨리 오라던 아내와 어머니께서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전화해도 금방 갈께 그러고 안 오더니 뭔 쇼핑백을 들고 오시는 겁니다. 알고보니 COACH라는 유명한 백이 80% 반짝 세일(20%도 아니고 80%!!!)을 하는 통에 예전부터 그렇게 갖고 싶던 백을 샀다고 신이 났더군요. oTL 털썩…
자, 이제 제가 이 글을 쓴 이유가 나옵니다. (길고도 길어라…)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다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본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아빠가 덜컥 눈 보러 가자고 하면서 아무런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오는 바람에 우리 아이들 고생 시켜서 미안해. 다음에는 아빠가 꼭 미리미리 알아보고 준비해서 우리 가족이 고생 안하도록 할께. 그리고 저렇게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게 됐으니 그래도 우리 하나는 건진 거 아니겠니?”
그러자 딸들이 이러더군요.
“아니에요 아빠. 아빠가 우리 위해서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우리가 화내고 짜증내서 미안해요. 그래도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 즐거웠어요. 게다가 엄마하고 할머니는 그렇게 예쁜 백도 생겼잖아요”
결국 아빠와 딸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늘의 위너는 엄마와 할머니!! 한턱 쏘셈!!” 을 외쳤고, 결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네 샐러드 부페에서 쿠폰을 동원한 저녁 식사를 하며 고생스럽지만 우습고 재미있었던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쓰고 보니 이거슨 오랜만의 일기(?)
Barry Lee
오늘의 교훈 : 짜증내고 투닥거리는 아이들에게 화내봤자 나만 손해. 인내와 이해와 겸손으로 대하자
추가 : 그런데 결국 그 식당도 아빠가 냈다는게 함정 -_-






축구와 사진을 사랑하며 트위터를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 어머니와 아내, 두 딸들을 사랑하는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빠. 그러나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하는 늦깎이 열혈남.
너무 화목한거 같아 쫌 재수 없지만… 배리님이니 용서해 드리…….. ^^;;;;;;;;;
ㅎㅎ 와~ 따님들이 멋진걸요? 저도 어제 아빠랑 좀 다투었는데, 집에 가면 저도 쿨하게 사과드려야겠어요. 에효..
누가 뭐라해도 아버지는 위대합니다!!!!!
특히 가족을 위해 돈 쓰실때 한층 더 위대해 보이시죠!!!
사람사는 모습을 읽으니 참 좋네요.
따님이 타인을 잘 배려하는것 같군요.
그말의 뜻은 사랑을 부모로부터 많이 받았다는 거죠. ^^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여자친구를 사귈 때를 보는 것 같다는…;;
앞으로는 안 그럴테지만요… ㅋ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살다 보니 저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감정적인 폭락장(?)이 시작되었을 때 현재 상태가 아닌 원래의 목적(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을 잊지 않는 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때 각자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솔직히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별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서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짜증, 화, 분노 같은 감정들이 치유가 되더군요. 그리고 이걸 애들이 그대로 배웁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죠. ^^
Berry님 참 잘하셨네요 ^ ^!!!
행복은 만들어 나가는 것인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잘 안되거든요…ㅠㅠ
“짜증내고 투닥거리는 아이들에게 화내봤자 나만 손해.
인내와 이해와 겸손으로 대하자”
한 주간의 묵상 화두로 정해봅니다.
좋은 글 나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