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논란에 대한 단상

2012/1/1 by

부러진 화살 논란에 대한 단상

영화 부러진 화살과 관련한 트윗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이 트윗이 일파만파로 리트윗이 되었네요. 이 트윗의 내용은 부러진 화살과 관련한 이 블로그 글, “부러진 화살과 미국의 지식인 하워드 진”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이 있어서 였습니다.

그 글에는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에 대한 소개와 함께, 법은 쓰레기다라는 관점과 법은 아름답다는 관점이 함께 소개됩니다. 또한 인종 차별의 근거가 된 미국 수정 헌법 14조가 다시 인종 차별 철폐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을 예로 들며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이 변화의 근거는 대법원의 깨달음이 아니라 깨어난 시민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었다고 지적한 것을 거론합니다.

저는 이 트윗과 함께 이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석궁 사건의 판사가 정봉주 의원의 항소심에서 1년형을 확정한 박홍우 판사였던 점을 거론하며 아이러니컬하다는 트윗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이전 글인정봉주 의원 유죄의 원인과 우리의 자세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거론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블로그 글을 간단히 요약하면, 정봉주 의원 유죄의 원인이 된 공직선거법 자체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 판결을 내린 판사가 좀 더 시대 정신에 부응하는 적극적 판결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 법이 제정되고 개정되던 20세기 한국의 선거전은 흑색 선전과 매수와 같은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이를 줄여보고자 이런 법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10.26 재보선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이런 법이 있다고 해도 작정하고 하는 흑색 선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거니와 이에 대한 국민들의 자정 노력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습니다. 따라서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하려면 이런 법이 없어져야 하고, 아직 법이 존재하는 상황이더라도 판사의 적극적인 판단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워드 진의 수정 헌법 14조에 대한 인종 차별 입장의 변화 문제나, 정봉주 의원 유죄의 근거가 된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의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문제나, 결국 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러진 화살”에서 거론한 사법부의 문제도 결국 이런 면 – 사법부가 법을 어떻게 적용하였느냐 – 에서 연관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트윗이 여러 차례 리트윗 된 이후, 이에 대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반박 멘션을 받았습니다. 부러진 화살의 김교수 석궁사건 공판의 항소심 판사가 이정렬 판사였다는 이유를 들어 진짜 나쁜건 정봉주 의원에게 1년형을 선고했고 석궁에 맞았다며 고소를 한 박홍우 판사가 아니라 2심 판사이자 진보적 판사로 분류되는 이정렬 판사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보수 트위터리안들의 멘션이었습니다. 이 부러진 화살 사건이 진짜 문제라면, 그 사건을 고소한 원고측인 박 판사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김교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가 잘못이라는 것이 그 분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사가 이정렬 판사라는 이야기 입니다. (덧붙임: 이 부분은 확인 결과 제가 잘못 안 것이며, 실제로 이정렬 판사는 이 석궁 테러 재판인 형사 사건의 판사가 아니라, 김교수 재임용 민사 재판의 주심 판사였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일단 이 사건의 개요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대체적으로 이 내용은 팩트로 보입니다.

김교수가 박홍우 판사의 집에 석궁을 들고 찾아갔다. 박판사는 김교수가 자신을 석궁으로 쏴서 자기가 다쳤다고 주장한다. 당초 이 사건은 살인 미수로 기소됐다가 상해로 바뀌었다. 김교수측은 이 석궁을 진짜로 쐈으면 살짝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건에 사용된 화살이 부러진 것이라고 했다가 멀쩡한 것이라고 바뀌었다. 와이셔츠에는 핏자국이 없고 속옷에는 있다. 이런 증거나 여러 증언이 채택되지 않았다고 김교수측이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박홍우 판사와 검사측이 “위협” 이라던가 “몸싸움 과정에서 긁힌 것”이 아니라 “석궁을 쏴서 맞았다”라고 주장했다는 점이 바로 쟁점입니다. 즉, 김교수가 석궁을 들고 간 것이나 최소한 위협 혹은 상해를 입혔다면 그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유죄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석궁을 들고 찾아가서 위협을 하려고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본적인 범죄 요건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히 판사에게”라는 이유로 저지른 죄보다 더 큰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저지른 죄가 아닌 그 밖의 이유로 처벌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재판들과 관련된 판사가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증거 채택이나 잘못된 판결을 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 판사가 진보냐 보수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와 검찰이 개인을 기소함에 있어 하나의 자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불공평한 판결이 이루어졌느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런 의혹을 받는 것 조차 사법부에게는 흠결이 될 수 있으며, 사법부는 처음부터 이런 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지적하는 것은 재판의 고소인이자 피해자인 박홍우 판사가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라는 지엽적인 문제는 아닐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히려 재판부가 과연 의지가 없는 존재인 법을 적용함에 있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그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의도했던 방향에 맞추어 재판을 했느냐에 대한 의문 제기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판사들은 늘 이런 점에 대해 고민할 것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 같은 일반인이 상상도 못할 고뇌와 성찰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었다면 이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어떤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박홍우 판사이건, 이정렬 판사이건, 혹은 어떤 다른 판사님이건 말입니다.

사법부는 일반 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당했을 때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따라서 판사는 스스로 고귀한 위치에서 내려다볼 것이 아니라 이정렬 판사 스스로가 최근에 트위터에서 말했듯이 시정잡배의 입장, 다시 말해 가장 평범한 서민의 입장에서 억울한 점이 없는지를 늘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서 과도하게 박홍우 판사를 몰아붙이는 것에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이정렬 판사를 걸고 넘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것 역시 비열한 물타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이 이 “부러진 화살” 영화를 보며 느끼는 분노는 박홍우 판사나 이정렬 판사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이에 의해 서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과 “그렇게 권력을 사용하는 이들” 입니다. 설령 이 영화가 과장되고 한 쪽의 주장만 반영한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내용이 국민적 공분을 얻을 수 밖에 없는 현 상황에 대해 먼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반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온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봉주 의원에게 징역 1년형을 내렸고 석궁에 맞았다고 고소한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 석궁 형사 재판과는 관련이 없는, 그 사건의 원인이 됐던 민사 재판의 주심 판사였던 다른 진보적 판사(이정렬 판사)를 거론하며 사태를 물타기 하려는 일부 언론의 시도는 언론의 자세를 포기한 비열한 태도입니다. “박홍우 판사가 아니라 이정렬 판사의 잘못을 뒤집어 쓴거다” 라던가 “이정렬 판사가 판결한 것이니 박홍우 판사는 피해자일 뿐이다”라는 논리는 제3자를 총알받이로 만들고 자기 편만 살리려는 아주 비열한 태도이기 때문이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한 의혹을 가리려고 다른 사법부 인물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가진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이런 개별 판사에 대한 비난이나 물타기보다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사법부에 대한 반성을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국민에게는 박홍우 판사에 대한 인신 공격 수준의 과도한 비난 등의 자제를 권유하고, 이와 함께 사법부에 국민의 이런 분노에 겸허하게 반성할 것을 요구하는게 상식을 가진 언론의 자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맨 앞에 언급했던 블로그 글에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습니다. 법은 쓰레기일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도, 또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 법을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쓰레기 같은 법 조차도 그것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적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사법부에 바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Barry Lee

 

덧붙임> 이 글에 오류가 있어서 덧붙입니다. 이 내용은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이정렬 판사는 석궁 사건의 2심 주심 판사가 아니라, 김교수의 재임용 재판의 2심 판사였습니다. 박홍우 판사는 2심 재판의 부장판사이고 이정렬 판사가 주심판사 였던겁니다. 즉, 부러진 화살에 나오는 “석궁 사건 형사 재판”과 이정렬 판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왜 이런 착각을 했나 살펴보니, 당시 재판에 대한 기사를 조선 일보가 뽑으면서 “이정렬 판사 “석궁테러 판결 내가 했다”" 라고 하는 제목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바람에 제가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저에게 트윗 주셨던 분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참고로 주심과 부장판사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재판부에는 합의재판부와 단독재판부가 있는데 합의재판부는 3명의 판사가 함께 재판을 협의해서 진행합니다. 이 는 1명의 부장판사와 2명의 배석판사로 구성됩니다. 이 때, 2 명의 배석 판사는 사건에 따라 주심 판사가 됩니다. 주심 판사는 판결시 먼저 의견을 내고 나머지 1명의 배석 판사와 부장판사가 함께 토론을 해서 판결이 이루어집니다. 이정렬 판사는 몇 년 전에 이미 김교수 재임용 재판은 영화와 달리 김교수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는 조선일보 보도가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덧붙임2> 이 글은 김교수의 재임용 항소심(2심)의 주심판사였던 이정렬 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이라고 합니다. 이 글만 놓고 보면 김교수의 재임용 항소심 자체는 딱히 문제삼기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가 다루는 문제는 김교수의 재임용 항소심 민사재판이 아니라, 석궁사건 형사 재판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임3> 본문의 내용과 덧붙임을 정리해서 영화 『부러진 화살』과 석궁 재판의 본질 이라는 글에 요약 정리했습니다. 이쪽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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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Joseph Razumihin

    법을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법을 적용하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씀, 지극히 공감합니다. 정말 쓰레기같은 법도 아름다운 방향으로 적용하여 힘없고 정직한 사람들 눈에서 눈물이 나지않게 하느 ㄴ것. 이것이 진정 정의로운 사회임을, 그러한 사회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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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lmiren

    이런 좋은 영화가 서울에 상영관이 정말 몇개 안되더군요..

    상영기간도 짧고….

    설마 누군가의 입김이 개입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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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천훈

    영어는 배워본 적이 없어서 어려운 문장은 사전을 옆에 놓아두고 읽읕때가
    있습니다.
    재차 감사 말씀 옮립니다.
    무탈 하시고
    건승 하시길…
    미음속으로 바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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