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목표, 전략, 그리고 전술

2008/6/24 by

뜬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군대 용어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대부분 전략과 전술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전술과 전략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전략과 전술이라는 용어를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자주 사용한다. 특히 비전, 목표, 전략, 전술을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잘나가는 기업이라면 회사의 궁극적 비전이 있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연간 목표가 있으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있고, 그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전술을 수립한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은 물론 비전이다. 비전이라는 것은 그 조직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어렸을 때 꾸는 “커서 나는 과학자가 될거야” 와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꿈”과 다른 점은 그것이 달성 가능하다는 점이다.

비전을 세웠으면 목표를 세워야 한다. 보통 비전과 달리 목표는 1년~3년 처럼 일정한 기간 안에 달성해야 할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연매출 100억인 어떤 중소기업이 “5년 안에 연매출 1000억의 중견 기업으로 도약” 이라는 비전을 세웠다면, 목표로는 “2008년 말까지 1차적으로 매출 200억 달성” 하는 식으로 세운다.

목표를 세웠으면 이제 전략을 수립할 차례다. 연매출이 100억인 회사가 200억으로 성장하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기존 기술을 토대로한 블루 오션 발굴”, “저가 시장 점유율 확대”, “고가 제품의 틈새 시장 공략” 하는 식의 전략을 세워 그 목표를 달성 가능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전술을 수립한다. 전술은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세부 방안이다. 예를 들어, 저가 시장 점유율 확대라는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부품 단순화를 통한 원가 절감으로 저가 시장 공략”, “어린이,노인 대상의 기능 단순화 저가 제품 개발 및 판매”, “베트남 외주 생산 체계 확립” 같은 것이 전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전술 밑에도 전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부서 단위의 목표가 세워지거나 세부 시행 방안을 작성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보면 비전-목표-전략-전술의 체계로 계획을 세우면 모든 것이 일목요연해진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나 할지 모르겠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나 업무 수행 방식에 큰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우선 조선일보가 증오해 마지 않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평 포럼(참여 정부 평가 포럼)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의 공약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너무 마이크로에 집중되 있다” 라는 비평을 한 바있다. 나라의 비전이나 목표를 제시해야 할 대통령 후보가 단순히 운하를 판다던가, 300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같은 사실상 전술에 불과한 수준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 필자의 정체성을 버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 되어 보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제로 그런지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공인하는 실용주의자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자이면서도 천박한 성과지상주의자이고, 기득권 세력인 한나라당을 등에 업고 있다. 그러니 그 혼령에 빙의되어 보자.

먼저 비전을 세워보자. 대통령 5년 수행 후 달성해야 할 비전이라면 “잘 사는 나라”쯤일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잘 사는 사람은 매우 매우 잘살게 되고, 못사는 사람은 그럭저럭 사는 나라” 쯤 될 것이다. 뭐,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나라는 아니라고 잠깐 믿어 주자.

그렇다면 우선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는 무엇일까? 이것 역시 필자가 임의로 세워보는 것이다.
1. 자본의 흐름이 활성화되어 지속적인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경제 구조 달성을 통한 7% 성장
2. 해외 자금이 매력을 느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자본 규모와 GDP가 성장하는 구조 구축
3. 각종 비용이 절감되는 효율적인 구조를 가진 나라
4. 가진 사람이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느끼지 않고 가진만큼의 권리 행사가 가능한 나라

이제 전략을 세워보자. 위의 목표가 그럴듯 한지는 일단 그냥 눈감고 넘어가자. 예를 들어 3.각종 비용이 절감되는 효율적인 구조를 가진 국가라는 목표를 위한 전략에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1 물류 비용의 감소를 통한 국가적 생산 원가 절감
3-2 공공재 비용의 효율화를 통한 비용대 효과비 극대화

마찬가지로 4번 목표의 전략에는 4-1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른 교육 시스템 개선으로 인재 양성, 4-2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른 건강 보험 체계로 의료 수준 질적 향상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전술을 세워보자. 3-1에 대한 전술로는
3-1-1 대운하 건설을 통한 국내 수륙 운송 수단 확보로 물류비 절감
3-1-2 육상 운송 비용 통제를 통한 물류비 절감
3-1-3 부산항 물류 시스템의 질적 향상을 통한 물류비 절감
3-1-4 외국 해운사의 고충 해결을 통한 부산항 기항 선박 증가로 물류비 절감
뭐, 이쯤되지 않을까? 3-2에 대한 전술로는
3-2-1 상수도 관련 공기업의 선진화(라고 쓰고 민영화라고 부른다)를 통한 비용대 효과비 증대
이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좀 정신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대충 감 잡았을 것이다. 대운하라는 공약이나 자립형 사립고,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공약들은 사실 전술 수준의 것이다. 목표나 전략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숲과 나무로 놓고 볼 때, 나뭇잎이나 줄기쯤 되는 부분이라는 이야기다. 심지어 300만개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도 있는데, 이것은 비전이나 목표는 커녕, 전략이나 전술도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300만개 일자리 창출은 무엇일까? 그것은 “경제 활성화”라는 목표의 “부수적 결과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대부분 전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국가 운영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일개 기업이나 컨소시엄쯤이 해야 할 일을 국가의 비전이나 목표라고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단기 경제 활성화 대책쯤으로나 내놓을 만한 것들을 장기적 목표처럼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 마이크로에 집착한다는 소리는 차라리 많이 봐준 말이다.

이런 문제, 즉 큰 그림을 먼저 본 후 세부적인 내용을 정리해 들어가는 방법이 국정 운영의 기본이라면, 그 반대는 어떨까? 미리 답을 내려 놓고 거기에 큰 그림을 끼워 맞추어 나가는 것.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이번 쇠고기 개방 협상에서 정부가 보인 모습이다.

본래 외국과의 통상 관련 협상이라는 것은 먼저 국가의 사회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포괄적 영향을 염두에 두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입장이나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협상 테이블에 앉아 상대의 입장을 들어보며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설득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 후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이를 합의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협상 결과를 알리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즉,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수립한 후 전술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 쇠고기 시장 개방은 제일 먼저 결정난 것이 세부 시행 방안이다. 아무런 사전 논의나 검토 없이 덜컥 합의부터 해 버린 것이다. 마치 답안지에 답 먼저 쓰고 그 뒤에 풀이를 맞추어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풀이가 제대로 나올 턱이 없다. 엉터리로 풀다가 자꾸만 선생님 격인 국민들에게 지적받고 징징거릴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목소리를 꽤나 높히고 있다. 이번에는 풀이에 좀 자신이 생겼나보다. 남이 써 준 답안지에 억지로 풀이를 끼워 맞춘 주제에, 그 풀이가 나름 자랑스러웠나보다. 실은 그렇게 풀이를 끼워맞췄다고 칭찬도 받고 이왕이면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먹으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부디 아니기를 빈다. (다음 총선이나 공기업 인사 때 보면 알겠지. 아니면 삼성에 특채될지도.)

이명박 대통령의 모든 것이 그렇다. 언제나 답부터 쓴다. 그것이 오답인지 정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술도 아닌 세부 시행 방안부터 결정한다. 그 다음에 풀이를 쓴다. 전술을 그 다음에 맞추어 쓰고, 그 전술에 맞추어 전략도 억지로 작성한다. 그리고 여기에 목표를 끼워 맞추려고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거시적 목표가 나올리가 없고, 맨날 하는 소리가 “실제로 해 보니 상황이 어렵다”는 소리만 반복한다.

“해 봤어?” 라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세상에 해를 못 본 사람은 쥐구멍에 있는 존재 밖에 없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려는게 아니다. 해봤어?라는 말은 사실은 거시적 목표와 이에 따른 재반 사항을 검토한 후에 나온 의견을 묵살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즉, 해봤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검토보다는 자신의 직관적 결정을 우선한다.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세운 후 전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술로 세우고 이것을 끌어모아 전략을 작성한 후, 여기에 목표를 끼워 맞춘다.

그러니 되는게 있을 리가 없다. 7.4.7이라는 것이 목표인 듯 하나, 사실은 “결과물”에 불과하다. 경제 체질 개선이나 무역 수지 개선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런데 그걸 목표라고 놓았다. 그러니 이제 그 가짜 목표, 사실은 전술도 못되는 시행 결과에 맞추어 목표나 전략, 전술을 써야 하는데 그게 써질까? 그러니 실제로 “해 보면” 될 리가 없다.

앞으로 5년간 (한나라당이 본체의 위기를 느껴 먼저 탄핵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이런 모습을 숱하게 반복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국민은 흔히 삽질로 표현되는, 세부 방안이나 결과를 오히려 목표로 제시하고 다시 그 잘못된 목표에 전략과 전술을 끼워 맞추다가 모든 것이 어긋나버리는 상황에 진절머리를 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문제점이고, 구체제 옹호 세력인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점일 것이다. 혹시 이명박 요정설은 사실이 아닐까?

Barr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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