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의원 유죄의 원인과 우리의 자세

2011/12/27 by

 

정봉주는 왜 유죄가 되었나?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 · 방송 · 신문 · 통신 · 잡지 · 벽보 · 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와 허위의 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7.1.13>

이 법은 1997년에 개정된 것으로, 당시에는 선거에서 흑색 선전은 가장 기본적인 선거 운동 방법일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흑색선전을 막자는 취지와는 달리 이 법은 정상적인 검증을 위한 의혹 제기마저도 막게 되는 폐단이 있다. 그래서 사법부에서 이 법을 적용할 때에도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허위사실을 공표할 때 그걸 인지하고 있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며, 정봉주 의원 유죄 판결에도 이러한 기준이 적용됐다. 정리하면, 정봉주 의원이 “이명박 당시 후보가 4-5월에 BBK의 실제 주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으므로 상대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한 흑색선전이라고 보아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의혹을 제기할 때 확신했으면 무죄, 긴가민가 했으면 유죄“가 되는 셈이다. 나꼼수 호외 3편에서 “우리는 아직도 BBK의 실제 주인이 가카라고 믿고 있어 씨바!” 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 법은 애초에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요소가 있는 법이고, 따라서 사법부에서도 조심을 한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해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문제가 많은 법이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될 재보선 당시 나경원 후보 진영이나 강용석 후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형사 처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배경에는 이들이 “나는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다”고 바득바득 우기면, 그리고 이들이 허위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면 무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심지어 실제로 그게 진실이라고 (무의식 세계야 어쨌건 간에) ”의식 세계에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정봉주 의원은 스스로 확신을 했다고 재판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거다. 말하자면, 흑색 선전에 가까운 음해를 하더라도 신앙심과 같은 확고한 믿음을 가졌으면 무죄, 그래도 사람이 양심이 있겠지 하며 의혹을 제기하는 이의 마음에도 꺼림직한 부분이 있는 의혹을 제기했으면 유죄가 되는 거다.

그러므로,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법을 적용함에 있어 재판부는 매우 조심해야 하고, 절대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지어 BBK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허위사실이라고 단순 규정해서도 안되려니와, 이에 대한 의혹 제기를 하며 절대적 믿음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이를 처벌하는 것도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애초에 이 법은 엉터리다. 20세기 한국에나 필요했던 법이다. 그러나 이 법은 이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따라서 이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이 폐지되기 전까지 사법부는 판결에 극히 조심스러워야 하며, 이 법과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경우에는 최대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 방향으로 판결해야 한다. 그런데 당사자가 그 의혹이 사실이라 생각하고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임의로 “스스로 믿지 않는다”라고 판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이 판결이 정치적인 판결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이들의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 과연 우리에게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 처벌”이라는 법이 필요한가? 또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렸을 때 형사 처벌한다는 공직선거법”이 필요한가? 이걸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명예 훼손은 물론 좋지 않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진실이건 허위 사실이건 퍼뜨린다면 이것을 퍼뜨린 이가 종국에 가서는 책임을 지는게 맞다. 하지만 그 책임을 지는 것과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전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의 명예 훼손을 했을 때 손해를 입는 것은 공공의 이익이나 국민이 아니라 명예가 훼손된 사람이다. 따라서 명예 훼손으로 인한 소송은 어디까지나 민사 소송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법기준으로는 이것이 형사 소송이다. A가 B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A를 감옥에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헌법상 명시된 표현의 자유 역시 훼손된다. 물론, A가 B의 재산인 명예를 파괴했다고 보고 폭행죄와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법이 만들어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사적 이해관계를 통제하던 후진국에서 벗어나, 개인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하는 시대로 접어들 때가 됐다.

이번 정봉주 의원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공직선거법 제250조 2항, 즉 상대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경우 실형 선고”라는 조항은 이보다 더욱 심각하다. 이번 10.26 재보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 법은 흑색 선전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워낙 위헌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판사라면 유죄를 주는 것에 주저하게 되고,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음해를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죄를 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설령 그게 허위더라도 나는 믿는다고 신앙간증만 하면 무죄가 되기 쉬우며, 그렇게 무력화 되기 쉬운 법이다.

원래 정상적인 선진국 사회라면 이러한 흑색 선전에 크게 영향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후보가 잠시나마 박원순 후보를 앞질렀다는 점만 보아도 우리 국민의 수준이 그렇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20세기 한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을 가려낼 힘을 갖추어가고 있다. 우리가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우리는 통제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건 결국 노예 근성이다. “우리는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규제를 풀고 더 노력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균형을 맞추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가져야 할 태도다.

결국 정봉주 의원 유죄의 시작은, 표현의 자유를 우리 스스로 구속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부터였다. 혹시라도 정치적 판결이 있었다면, 이렇게 어리석은 법을 만든 우리의 잘못을 악용한 것이다. 이 잘못된 시작을 고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이 법은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거짓 공약을 내세우는 이들과 흑색 선전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낙선 운동도 합법화 되어야 한다. 민주 국가는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룩되는 것이지 법과 규제를 통해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Barry Lee

 

추가> 이 글의 내용이 되는 트윗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재판부만 탓하던 중 한 트친분이 쓴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제 생각에 일부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했고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 트친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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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419

    흑색선전을 막자는 취지는 좋았으나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 식의 판결이 가능하게 해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법조문이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대로 조심해서 적용 해야 할 조문임에도,
    현행법상으로도 공표된 사실이 허위라는 것이 구성요건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정봉주 전의원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의 입증은 검사가 해야 마땅한데, 검사의 허위라는 명백한 입증이 없었고,
    정봉주 전의원의 허위에 대한 인식 유무도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수는 없으므로 제출된 증거들을 통해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는데..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 충분히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내려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은 사법부.

    영화(주로 미국)에서 보이는 법원 앞의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은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들어 강한 정의에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법원 대법정 앞의 동상은 눈을 뜨고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죠.
    정의에의 의지보다는 형식논리를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요?
    눈을 뜬 이유는 언제든 감기 위함일까요?

    “정의가 살아있게 하는 것은 법률조문이 아니라 정신이다”
    (It is the spirit and not the form of law that kips justice alive) – Earl Warren 연방대법원판사
    in “The Law and the Future” in Fortune magazine (November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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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419

    오타 .. kips -> keep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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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unicastle

    정말 꼼꼼하고 멋진 말씀 감사합니다. 감동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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