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받지 못하는 정부가 독이다

2008/6/17 by

이명박 대통령이 OECD 장관 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그것도 “신뢰 없는 인터넷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인류에게 유익하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악영향을 끼친다” 라는 말도 했다. 언론보도에서도 인정하듯이 촛불 시위의 근간이 된 인터넷 여론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밖에 해석이 안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 참 웃기다.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유익하고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악영향을 끼친다니, 세상에 안그런 것이 어디있나? 옆집 아줌마의 잔소리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유익하고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악영향을 주며, 술취한 할아버지의 주정 소리도 긍정적이면 유익, 부정적이면 악영향을 준다. 뭐 꼭 말꼬리 잡기 같으니 그 말은 일단 그러려니 하자.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신뢰를 거론했다는 점이다. 신뢰를 담보하지 않은 인터넷은 독이라는 말을 했는데, 문제는 바로 신뢰를 담보한다는 대목이다. 물론, 그 말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신뢰를 거론할 자격이 있는가? 일부 여론 조사에서 급기야 지지도 7.4%까지 급락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 신뢰를 운운한다니, 좀 낯간지러워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필자가 앞서 올린 글 (신뢰를 잃은 이명박 정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가 국민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저 말로만 “이 사람, 믿어 주세요” 를 반복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가 구체제 아래의 산업 사회에 머물러 있던 1987년에는 그 말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저 믿어달란다고 해서 믿는 사람은 없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합리적 절차에 의해 결정된 정책이 입안되고, 또 정책이 합당한 절차와 방법론에 의해 시행되며, 이로 인해 “예측 가능한”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사전에 정의된 절차와 매뉴얼,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시스템에 의해 90% 동의는 어려워도 90% 인정은 가능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은 정부의 정책이 비록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와 절차로 그 정책이 결정되었으리라는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명박 정부는 이런 신뢰성 있는 절차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직관이나 생각, 경험 등에 의해 결정되는 비논리적이고 비시스템적인 결론을 미리 내리고 이것에 정책 논리를 끼워맞추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은 먼저 결정하고 무조건 끼워맞추기가 아니라 국민의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리 답 써놓고 풀이를 끼워맞추고 있는 식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과 그 결론을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 마음으로 공감이 안되도 머리로 이해는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건 도무지 마음이건 머리건 이해도 공감도 안된다.  그러니 뭔가 야료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날이 갈 수록 정부 정책은 신뢰를 잃게 되며,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대통령까지 모두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쇠고기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필자의 글에서 몇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언급된 내용이라서 지겨울지 몰라도 한번 정리해 보자.

우선, 이번 협상 타결은 사실 쉽지 않은 문제였음에도, 워싱턴에 가 있던 이명박 대통령의 긴급 회의 3시간만에 타결 완료됐다. 즉, 이 순간 풀이 없이 정답이 작성 완료 되었다. 이 정답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잘 된 회담”이라는 정답 채점까지 완료했다.

그런데, 이 정답을 정답으로 보이게 하려는 풀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농림 수산 식품부 관련 공무원들이 이런 저런 끼워맞추기를 하다가 언론과 시민들, 네티즌들에게 들통이 나서 체면 구기고 불신만 얻었다. 미국 현지 점검단은 “문제없음”이라는 정답 답안지를 미리 받아들고 출국했는데, 가보니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일단 “문제 있음”이라는 풀이를 가지고 귀국하니 공항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할 말이 있겠는가? 그저 “조속한 시일 내에..”만 고장난 테이프처럼 틀어댈 수 밖에. 결국 내부 회의를 거쳤는지 “문제 없음”이라고 발표했지만 불과 2~3주 만에 “문제가 있음”이라는 내부 문건이 공개되는 망신을 당한 것이다.

아, 이쯤되면 지겹다. 이명박 정부가 내부 그룹웨어 로그인도 못한다는데 필자의 블로그나 아고라에 들어와서 필자의 글을 봐줄리도 만무하다. 백날 그들에게 “신뢰의 문제는 인터넷 자체가 아니라 바로 대통령의 교만이 그 원인이다”라고 떠들어댄들 들어줄리가 없지 않은가?

OECD 장관급 회담이라면 이미 한국내 사정도 다들 훤히 꿰고 있을터인데, 자국내 네티즌의 신뢰도 못 얻는 대통령이 “인터넷은 신뢰가 없으면 독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을 것인가?  오히려 대통령의 그런 소리가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온 몸으로 외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세상의 중심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외친 꼴이다.

정부에게 말한다. 결론부턴 내지 마라. 인터넷 여론이라고 하는 것 역시 국민의 여론이다. 대통령이나 위정자는 여론을 듣는 존재이지 여론을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신뢰 구축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들이 받고 싶어하는 신뢰는 신뢰가 아니라 종교적 믿음이다. 종교에서 “묻지마 신앙”을 요구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그야말로 명박교 신도쯤 되어야 믿지 나머지 정상적인 종교인이나 무신론자가 명박교를 믿겠는가?

그러니, 이젠 좀 여론을 들어라. 말하기도 짜증난다. 좀 귀를 열고 들어라. 국민더러 마음 열고 들으라고 하지 말고, 대통령부터 귓구녕 열고 들어라. 신뢰를 얻어야 할 존재는 국민도 아니요 인터넷도 아니다. 바로 정부와 대통령 스스로가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한다. 바로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여론을 듣는 것이다. 잘 듣고, 그 의견을 취합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아놔.. 내가 지금 무슨 삽질을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짜피 말해도 듣지 않을텐데.. 면전에서 말하면 아마 고소나 하지 않을까? 어짜피 고소영 정부니까 고소도 잘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자. 신뢰없는 인터넷이 독이 아니라,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가 독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냥 식물 정부다. 5년간 한 국가의 정부가 식물정부라면 나라가 망조가 들지 않겠는가? (지금 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아예 식물정부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배리 이진행 ( http://www.bloggershome.net/barry )

5 Comments

  1. 벼락망치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덜떨어진 새끼들에겐 너무 과분한 글이네요.

  2. 시민

    국민의 신뢰를 받고 싶기나 할까요…

    그냥 국민은 국민, 우리는 우리 정신이잖나 싶으네요.

    사실 지네들끼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는데, 괜히 소고기 땜시 홀라당 말아 먹게 되었습니다.

    • Barry

      국민을 “다스려야 할 어리석은 백성”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에휴.

  3. 조원일

    잘 읽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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