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재협상, 가능한가요?

2008/6/12 by

연일 계속되는 촛불시위에 등 떠밀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발걸음이 다급해지고 있다. 언제는 쇠고기 시장 개방 합의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괴담이나 퍼뜨리는 배후 세력 색출에 열심이더니, 이제는 너도나도 재협상을 해보겠다고 난리다. 외교부에서 정식으로 미국과 대화를 하면 될 것을 당정청이라는 새로 만들어진 정부 부처라도 있는지 (특허청이나 중소기업청도 아닌 당정청?) 너도나도 미국으로 출발했다. 이제는 외교부 관리까지도 미국에 재협상하러 출국하는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2분 기자회견까지 하고 떠난다.

이쯤되면 당장이라도 재협상에 돌입할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전망은 암울하다. 미국 상무장관은 가볍게 “즐”을 날려주셨고, 바우와우인지 버시바우인지(하는 소리로 봐서는 바우와우 같다) 하는 막말하기 좋아하는 주한미대사는 수일 내에 “추가적 양해사항(understanding)”이 나올 것이라는 정도의 서비스 발언까지 했다. (언제는 과학 공부나 하라더니)

그렇다면 재협상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 우리 국민은 아예 광우병 걸릴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는데 설마 방법이 없기야 하겠는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하나씩 짚어보자.

1. 가장 높은 가능성 – 추가적 양해 사항

재협상이 실현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외교적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번 한미 쇠고기 시장 개방 합의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앞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시장 개방을 위한 중요한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입장으로선 실제로 30개월 이상이나 소장 부위등을 하나도 못 파는 한이 있더라도 공식적인 재협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재협상을 실제로 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합의 내용이 바뀌게 된다면 이는 중요한 선례가 되며, 향후 미국과 협상을 하는 나라들마다 거론하게 되는 미국의 약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재협상을 하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한국인을 안심시키는 방안이 최선이다. 그리고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자율적 규제다. 그런데, 애초에 이 문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율적 규제에 대한 합의가 별 무리없이 이루어졌다면 그 선에서 봉합도 가능했지만, 어리석은 미국이 이런 한국측의 요청을 5월에 이미 거절해버려서 이 방법으로는 해결이 어렵게 되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바로 “양해 사항”을 합의하여 이를 추가(amend)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합의문 원문은 변화가 없으며 일종의 부칙과 같은 형태로 추가가 되므로 합의문은 합의문대로 유지되고 규제는 규제대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양해 사항에 30개월 미만 및 소장 부위등 SRM 부위의 미국 기준 적용, 그리고 AMR Product (선진 회수육 제품)의 규제 등이 포함될 경우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방안의 결정적 문제점은 바로 “양해 사항은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라는 점이다. 이는 양쪽 당사자간에 서로 “이해해주는” 내지는 “인정해주는” 정도의 내용이기 때문에 서로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지키려고 노력하겠지만, 만에 하나 실제 거래 중 이것이 준수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적으로 요구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가 없다. 물론 양해 내용과 방법에 따라 일정 부분 강제력을 가질 여지는 있다. 하지만 미국이 강제력을 갖는 내용까지 양해 사항으로 합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분노한 한국인들을 납득시킬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이젠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인데, 여기에 미국 정부의 “양해하겠다”는 약속 따위는 사실상 휴지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양해 사항이 체결되는 시점에서 한국민들은 한 번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고 촛불 시위는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양해 사항이 겉으로 보기에 한국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었다면, 그것이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근본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렇게 양보했는데도 계속 우기는 사람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노리는 좌파 빨갱이들”라는 논리가 집중적으로 터져나올 것이다. 그러면 결국 한국인들은 사실상 별로 얻은 것도 없이 좌절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정부가 다시 한번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의 근본적 문제는, 별로 도움도 안되는 양해 사항 좀 얻자고 미국측에 중대한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상황을 모면할 카드를 얻게 되는 반면, 국가적으로는 쇠고기 개방에 따른 광우병 위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2. 고시 안하고 내년까지 질질 끌기

친미라고 주장은 하지만 사실 미국에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인 현 정권이 택하기는 어려운 방법이 있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고시 안하고 내년까지 질질 끌기”다.

원래 쇠고기 시장 개방 합의는 한미FTA의 전제 조건, 일종의 댓가로 거론되어 왔던 문제다. 따라서 쇠고기 시장 개방이 합의된 지금, 미국으로서는 FTA의 의회 인준에 대한 부담이 생기고 있다. 문제는 현재 미국의 의회가 부시의 공화당이 아니라 오바마의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 기업적이기보다는 친 서민적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적어도 그런 척은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FTA라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도 않은데다, 설령 이것을 인준한다고 해봤자 그 공이 전부 부시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FTA를 인준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냥 하느니 내년까지 끌었다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갖은 트집을 잡아 좀 더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을 한 후 “이것 봐라, 부시가 엉망으로 한 것을 오바마와 민주당이 개선했다” 라고 한다면 차라리 이익이 더 크다. 따라서, 대선 이후로 의회 인준 자체를 미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한국의 정부가 좀 배짱만 있다면 한국 내 악화된 상황을 핑계로 장관 고시를 질질 끌 수 있다. 그러다가 미국의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 문제를 당장 거론하기가 어려워지고, 적어도 대선 이후로 은근슬쩍 미룰 수가 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오바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 하지만 누가 알랴 – 만약 오바마가 되서 FTA를 걸고 나오면 한국 정부 역시 쇠고기 문제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FTA 양보해 줄테니 쇠고기 문제 양보해라” 는 식으로 네고를 해 볼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FTA 에서 가시적 성과를 끌어내야 하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어짜피 질질 끌던 쇠고기 문제도 “신사적으로” 양보하면서 나름대로 결과물을 얻게 되니 서로 Win-Win 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명박 정부에게 Win 이지, 한국 국민으로서는 또 뭔가를 양보해야 하니 Lose 다)

3. 미국 쇠고기 산업을 직접 압박하는 네티즌 운동

좀 더 위험하고 실현 가능성도 낮지만, 이것이 성공하면 대박인 방법도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 쇠고기 산업을 한국의 네티즌들이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미국 내 각 언론이나 포털 사이트에, 제대로 된 영어로 작성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게시물을 조직적으로 올리거나 홍보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수준이 높고 세련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확한 증거를 예시하면서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쇠고기의 1차 문제점,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국으로 수입되는 쇠고기의 2차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FDA 관리가 미국 내에서도 30개월 이상된 쇠고기가 소시지나 햄버거용 패티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 메일을 공개하고, 맥도날드가 이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한국 내 대표적 친미단체가 미국 맥도날드에서 30개월 이상 된 내장이 포함된 고기를 사용한다고 발언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맥도날드의 주장이 맞을 것으로 믿지만, FDA 관리가 미국 내 햄버거용 고기에서 사용된다고 했으니 우려된다는 식으로)

그리고, 이에 대해 미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한국으로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를 수출하겠다고 합의한 미국 정부와 업계가 비도덕적임을, 그리고 이에 합의한 한국 정부가 dumb한 존재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잉글리쉬 후뤤들리한 정부를 위해 영어로 써줬다. “바보같은”이라는 뜻임:필자 주) 이와 함꼐 미국이 유일한 동물성 사료 사용국임을 설명하고, 반추동물 사료를 직접적으로 재사용하지는 않지만, 돼지나 닭으로의 교차 감염으로 결국 다시 광우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0.1%만 검사를 하는 점이나 다우너 소도 사료로 사용한다는 점 등 미국민들이 알게 되면 놀랄 수 밖에 없는 사실들을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다.

즉, 미국 내 쇠고기 업계가 화들짝 놀랄만한 상황을 만들고, 미국내 쇠고기 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한국에 무리한 수출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고, 그래서 업계 스스로 한국인들의 분노를 무마하려는 노력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법정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고, 오히려 일이 더 커져서 매우 괴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없어서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용감한 명박쥐가 하려나?) 즉, 이 방법은 하려고 마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자칫 문제를 악화시킬 – 열받은 미국 쇠고기 업계가 독을 품고 덤빈다던가 혹은 소송을 건다던가 하는 –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 국내 기준의 강화를 통한 간접적 제한

마지막 방법으로 재협상이나 추가 양해 사항마저 물건너 갈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선 쇠고기 수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허가시 각종 위생 규정 등을 철저하게 적용하면서 30개월 이하만 수입하도록 적절하게 압력을 넣는 방법이다. 하지만 개방 합의에 월령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임의로 월령 제한을 두도록 압력을 가한다면 지금 당장은 몰라도 나중에는 무역 보복 조치를 당할 건수가 된다.

그러므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국내 유통되는 모든 쇠고기에 대해 100% 광우병 전수검사를 실시하는 방안이다. 일부에서는 한우 역시 위험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국민으로서도 광우병 우려가 있는 고기를 한우라고 해서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비록 농민 입장에서는 도매급으로 넘어가며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비교하곤 하는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자국내 쇠고기에 대해서도 100% 전수검사를 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자국내 도축되는 소에 대해 전수검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한 요구가 가능해지고, 한국내 수입되는 쇠고기의 도축시 전수 검사를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재협상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또한, 국내로 수입되는 쇠고기에 대해 전수검사를 함으로써 – 물론 비용은 수입자가 부담하게 한다. 이는 수입 쇠고기의 원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 적절한 무역 장벽 역할도 하고,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해서도 적절한 조치가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축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불러오게 될 가능성이 높아, 안그래도 사면초가인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위험성을 무릎쓰고 선택할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낮다. 물론, 이 방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매끄럽고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정리하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질적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의 수입을 방지할 방법 중 가능성이 높은 것은 미안하지만 없다. 바우와우 대사가 언급한 추가적 양해 사항 역시,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일지 몰라도 강제력이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결국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그 밖의 방법들 중 2번이나 4번은 이명박 정부가 선택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고, 3번은 그것을 추진하는 네티즌이 직접적 피해를 입을 위험이 높다. 5번은 어렵지 않게 시행은 가능하나 그 후폭풍이 심각하다.

만에 하나 이명박 정부가 한나라당이 장악한 18대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거나, 스스로 하야를 하게 된다면 –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자 – 다음 정권에서 핑곗김에 2번을 선택해 질질 끌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물론, 이렇게 정권이 바뀐 경우, 국민의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4번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쇠고기 개방 합의의 재협상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읽어보신 분들은 동의하시겠지만, 원래 합의 자체가 어이없는 삽질이다보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다 막혀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재협상에 대해 자꾸만 논의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시간 낭비요 국가적 에너지 소모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재협상이라는 단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여주기에 불과한 무의미한 재협상에 대해서는 관심을 접고, 광우병 문제에서만큼은 위의 4번 안처럼 내부 유통 및 도축 시스템을 제대로 확립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야 하며, 이와는 별개로 이런 문제를 일으킨 현 정권의 비도덕성과 독선적이며 서민을 무시하는 친 자본적 정책,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들 , 예컨대 조중동 문제라든가 18대 국회 문제 쪽으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국민의 건강권은 건강권대로 제대로 살리고, 국민의 주권 역시 주권 대로 살리며, 삽질한 정부때문에 미국에 쓸데없이 퍼주는 일을 줄이고, 이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접근하는 가장 합당한 길이 아닐까 한다.

배리 이진행 ( http://www.bloggershome.net/bar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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